▲ 「날라리 비보이, 회계사 되다」의 주인공 서준혁(경영·04)동문

날라리 비보이부터 회계사까지, 마음만 먹었다 하면 거침없이 꿈을향해 달려갔던 사람이 있다. 바로 서준혁(경영·04) 동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냈고, 본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성공기를 주제로여러 차례 강연을 해 오며‘선배 멘토’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긴 인생 이야기를 짧게나마 신문에 담아 보았다.

훤칠한 키, 야리야리한 몸. 그의 첫인상은 전혀 춤과 연관돼 있어 보이지 않았다. 네모난 검은 뿔테에 정장을 말쑥이 차려입은 그는 현재 모 카드회사 전략기획실 경영전략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회사원’같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소년시절에 1세대 비보이팀 피플크루에서 비보잉을 하던 춤꾼이었다.

춤에 미쳤었던 중학생 소년

춤의 세계에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어요.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서 어렸을 적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집에서 반대해서 다른 걸 생각해봤죠. 그게 바로 춤이었어요. 당시 공부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고 그때 제가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춤을 추러 다녔죠. 주변에서 저를 신기해했고, 잘 한다고 하면 신이 났어요. 장기자랑 시간에는 항상 춤을 췄어요.
  춤을 추러 다니는 저를 보고 선생님들은 날라리라고 했죠. 어머니도 싫어 하셨어요.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춤을 추는 저에게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제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것이 제가 춤에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예요. 슬픔을 잊기 위해 뭔가에 빠져들고 싶었고, 그때 제가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춤이었기 때문이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의 길로 발을 들였고, 그러다가 피플크루에 발탁이 된 거죠.

그때 학교 성적은 어땠나요?
꼴찌는 아니었는데, 제 뒤에 네다섯 명 있는 정도(웃음). 사실 그때는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나중에 성적표를 보니 딱 한과목을 잘했더라고요. 바로‘상업’이라는 과목이에요. 국·영·수 이런 것들은 전부‘가’인데, 상업만‘수’였더라고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그 과목을 재밌어했어요. 제가 재밌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즐기며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죠.

언제 춤추는 걸 그만둔 건가요?
  실제로 마지막 활동을 한 건 2002년 월드컵 바로 전에 있었던 행사가 끝이었어요. 사실 그 무렵춤을그만둘것인지말것인지고민을했죠‘. 내가정말이렇게살고싶은게맞나?’‘, 내가정말 하고 싶은 게 춤인가?’저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졌고 이렇게 살면 뭔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학생인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겠어요, 바로 공부죠. 공부는 학창시절밖에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바로 공부로 전향했어요.

공부를 시작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제가 공부에서 아예 손을 뗐었잖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춤 출 당시 내가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그 단계까지 올라와 있었던 것처럼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 했어요‘. 공부를해보지 않았지만 내가못할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담으로는, 1년만 죽어라 공부하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는 가겠다는 상상까지 했어요. 참 겁 없이 뛰어들었어요.
  공부를 시작하니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지금해서 잘 할 수 있겠냐는 반응도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정말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셔서 끝까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잘 할 수 있었어요.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춤이 그립진 않으셨나요?
  공부를 시작할 때 마음을 먹었어요. 내 인생에 앞으로 춤은 없다고요. 아예 못을 박아 버렸죠. 그때부터 저에게는 오직 공부뿐이었어요. 그래도 심적으로 준비가 잘 안 되니까 여러 수단을 썼어요. 휴대폰도 없애보고, 머리도 잘라보고요. 그런식으로 저를 다잡았어요. 마음을 곧게 잡는 것이 공부할 때 아무래도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학교와 집, 도서관 이렇게 세 곳만을 전전했어요.
  성적은 처음엔 잘 나오지 않았어요. 고3 여름방학 때까지도. 해도 그 성적, 안 해도 그 성적이어서 힘들었죠. 이때 사람들이 많이 포기하죠.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시기를 이겨내니 성적이 확 올랐어요.

최연소 CPA합격생이 되다

학교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들었는데요?
  졸업할 때는 전체 수석의 영광을 안을 정도로 학점에 욕심이 있었어요.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면, 고3 여름방학 때 수시 1차로 동국대에 지원을 했었어요. 1단계는 논술 100퍼센트, 2단계는 내신점수로 합격생을 가르는 거였죠. 1단계에 붙고, 2단계를 위해 내신점수를 입력할 때였죠. 그런데 1단계 합격자 내신 평균을 보니 90점대였어요. 제 내신 점수는 50점이 채 안나오는데 말이죠. 그때 느꼈어요. ‘이런 기록은 평생 남는 거구나, 정신 차리고 잘 해야겠다.’라고요. 그렇게 학점관리를 하면서 대학교 1학년 때는 CPA(공인회계사자격증)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회계사라는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된 건가요?
  고등학생 때 경제관련 신문을 읽으며 어떤 직업들이 있나 살펴보고 있었어요. 펀드매니저 등 매력적인 직업이 꽤 있었는데 그 중 회계사라는직업이 가장 인상깊었어요. 그때부터 막연하게 회계사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고2때 장래희망을 쓰는 칸에 회계사라고 써낸 적도 있어요. 어떻게, 무슨 공부를 해야 회계사가 될 수 있는지 몰랐지만 대학 입학 후 학교 고시반인 현의제를 알게 돼 그곳에 들어가고 CPA를 따기 위해 본격적으로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시반 시절엔 어땠나요?
  공부가 되지 않을 때는 삭발을 감행하면서까지 마음을 다잡았어요. 삭발을 하면 밖에 나가지 않게 돼요. 창피해서라기보다는, 삭발까지 했는데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참 많이 찾아왔었어요. 저에게는 힘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있는데, 그런 행동들을 통해 힘든 마음을 외부적으로 보다는 내부적으로 혼자 풀곤 했었죠. ‘이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계속 마인드 컨드롤을 했어요.

최연소로 CPA에 합격을 했는데 그때 당시 심정은요?
  합격 후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또 다른 고시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한번 무언가를 이루고 나니 또 다른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마음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좋은 결과를 이룬다면 자신감이 저절로 생겨나죠.
  생각을 크게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큰 것을 한 번 깨고 나면 작은 건 아무 것도 아니게 느껴져요. 하지만 큰 걸 먼저 깨기는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깨 나간다면 자신감도 쌓이게 돼 있죠.

좋아 하는 일에 거침없이 도전하기

자기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밀어붙이는 성격이요. 저는 한다면 한다는 주의예요.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다시 해 보고. 그리고‘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고 사는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힘든 시기가 닥쳐올 때마다‘이것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는데 실제로 다 견뎌냈고요.
저의 모토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생을 즐기자는 거예요. 그 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진짜 중요해요. 지금 제가 하는일은 사실 잘 모르는 분야예요. 하지만 경험한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도 잘 풀리지 않을까 생각해요.

멘토로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꿈이 없다면 내 위치가 어딘지 확인할 수 없을 뿐더러, 목표 없이 그 때 그 때 살아가는 인생이 돼 버려요. 꿈을 갖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세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싶으면 여행을 가보는 등 다양한 활동에 도전해 보세요.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은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보일 거예요. 설령 그게 잘 안보여도 하나씩 뭔가를 이루다 보면 결국 꿈과 가까워질 거예요. 거침없이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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