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최초의 근대 대학이 될 숭실은 1897년 10월 10일 윌리엄 베어드의 사랑방에서 문을 열었다. 이른바 ‘사랑방 학교(Sarangbang Class)’였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이듬해인 1898년 가을,‘ 시랑방 학교’학생 모집을 공고하였더니 60여 명이 지원할 정도였다. 관리가 되어 남 위에 군림하려는 젊은이들이 이 사랑방 학교에 모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개혁 일꾼이 되려는 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베어드는 이 가운데 건강상태와 가정형편, 학업성취능력을 고려해 18명을 선발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성경, 산수, 한문, 역사,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교육 방식도 새로웠다. 서당에서 무릎 꿇고 앉아 회초리 든 훈장이 ‘하늘 천(天) 따 지(地)’하면 학생들이 따라 ‘하늘천따지’라고 외쳐대는 ‘외우는 교육’이 아니었다. 큰 책상에 선생과 함께 둘러 앉아 서로 질문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교육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양반집 아들이나 상민의 아들이나, 나이 많은 학생이나 나이 어린 학생이나, 부잣집 아들이나 가난한 집 아들이나 모두 함께한 책상에 둘러앉아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사랑방 학교’에서는 사람을 신분, 성, 나이 따위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유교 사회의 여러 칸막이들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진 것이다. 이처럼 숭실의 교육 내용과 방법은 새롭고 개혁적이었다. 사람을 구분하며 차별하던 유교 사회를 혁파하는 배움의 공동체였다.


  그래서 개혁 지향의 젊은이들이 이 ‘사랑방학교’로 몰려들어 ‘폭발적인 급등현상’이 일어났다고『숭실대학교 10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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