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밤거리를 걷는 사람치고 우울한 사람이 있을까. 아니 카지노에서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금액의 돈을 탕진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막 속의 별천지인 이곳에서 누구나 유쾌해질 것이다.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초호화판 럭셔리 호텔의 네온사인은 거리를 대낮처럼 밝게 만들고, 그 불빛 속으로 나의 오감(五感)은 몽환(夢幻)적인 느낌으로 빠져 버린다. 오늘 밤이 나의 마지막인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가는 곳마다의 형형색색을 즐긴다. 오감 중 특히 시각을 특별대우해주는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나는 좋아한다. 인간의 눈은 그어떤 스크린보다 완벽하게 도시의 색깔을 구현해 낸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나의 횡재를 꿈꾸고,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게 만드는 도시가 라스베가스다. 별안간의 횡재와 염원하던 로맨스가 일반 승용차를 다섯 개나 이어 만든 것 같은 기다란 리무진 속에서 현실이 되는 이 도시는 연중무휴다. 초원이라는 뜻의 이 잠들지 않는 도시로 저마다의 생각을 가진 관광객이 몰려온다.

  라스베가스하면 슬롯머신이나 블랙잭 같은 도박이 연상되지만 사실 도박보다 더 유명한 것은 다양한 공연이다. 타이타닉 쇼, 뮤지컬 맘마미아, 태양의 서커스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공연들은 물론,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쇼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한국판으로 각색된 것이 아닌 글자 그대로 본토에서 즐기는 오리지널 쇼의 입장료가 이토록 착하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체류하는 동안 매일 공연장으로 발을 옮겼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나라에서보다 반값 이하, 심지어 삼분의 일 가격에 표를 구한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나에겐 슬롯머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동전 소리의 황홀함보다 값싼 공연 티켓을 사는 즐거움이 더 컸을 정도였으니까. 혼자보기 아까운 뮤지컬 공연장 앞에서 왠지 가족과 친구 생각이 났다. 공연이 끝나도 몇 번이고 계속되는 커튼콜은 공연의 또 다른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 안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감동을 만들어 낸다면 공연장 밖 거리에서는 이제는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명품 호텔이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우리에게는 보물섬 호텔로 더 잘 알려진 트레져 아일랜드 호텔 입구에서 벌어지는 해적쇼는 이미 명물이 된 지 오래되었으며,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는 우리나라 드라마에도 많이 등장한 바 있다. 시간만 맞추어 가면 돈 안들이고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된다. 도박도시답게 음식의 가격도 저렴한데 질 좋은 안심스테이크로 배를 채우고 찾아 간다면 순간 일석삼조로 변한다.

더 화려하고 싶어도 더 화려할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함을 가진 라스베가스는 마치 신에게 도전하는 바벨탑과 같았다. 더 높이 쌓아 신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인간의 욕망마저 느껴졌다. 순간적이고 덧없는 욕망이지만 그 욕망이 꺾이기 전까지는 계속 투쟁하는 인간의 만용이 떠올랐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인 인간이 만든 작품. 신의 입장에서 보는 인간의 작품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라스베가스는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 그러나 그 도시에 도사리고 있는 환락이라는 이름의 큰 존재에 중독되지 않는 다면 한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작품이 된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라스베가스를 권한다. 인간이 고안해낸 인간을 즐겁게 만드는 기술을 느끼면서 신과 인간, 예술과 또 다른 형태의 예술에 눈뜨게 될 것
이다. 네 번이나 가 본 라스베가스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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