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으로는 너무 가깝지만 정신적으로는 지극히 먼 나라 일본, 역사적으로는 너무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 밀접한 역사 때문에 오히려 잘 알고 싶지 않은 일본. 그 일본을 나는 참 많이도 갔다. 우리와 닮은 듯하면서도 절대로 같지 않은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1998년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본의 도시를 여행했다. 큐슈 지역은 비행기로 한 시간도 채 안 걸릴 정도여서 주말을 이용하여 1박 2일로 다녀온 적도 있다. 일본을 계속해서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친구도 많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친일파(?)라는 소리마저 들은 적이 있다. 방문해 본 도시의 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단순히 일본을 맹종하는 의미로서의 친일파를 넘어 지일파(知日派)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굳이 역사적 사실을 논하지 않더라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우익들의 역사관만 아니라면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교활한 나라가 결코 아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몸에 밴 그들의 친절은 일본인들의 특성을 규정하는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모습)라는 다분히 부정적인 말을 훨씬 뛰어 넘어 나의 기분을 매 순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그것이 혼네면 어떻고 다테마에면 어떤가. 내가 손님으로서의 대우를 충분히 받았다고 느끼면 그만인 것을. 물론 음식점에서도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공중목욕탕에서도 옆 사람에게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한다는 그들의 모습을 책으로만 읽다가 직접 체험하고 나니 좀 답답하기는 했다. 백 권의 책보다 한 번의 실제 체험이 주는 강렬함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답답함은 내가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식당에서도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들이 보였고, 도쿄에서는 결코 들어 보지 못했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걷는 모양새도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의 연예계를 주름잡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사카가 위치한 간사이 지역 출신들이고, 특히 개그맨의 경우는 오사카 출신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인 도톰보리를 걷다 보면 서울의 종로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게 밖으로 나와 큰 소리로 손님을 모으는 사람하며, 오꼬노미야끼(일본식 부침개)나 라면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들 즐거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사람들의 경쾌하고 즐거운 표정은 오사카의 자랑인 오사카 성을 가든, 동물원역 근처의 재래시장을 가든, 중고 물품을 전문으로 파는 상점에 가든 어디서든 볼 수가 있다. 맛집이 많기로 소문난 난바역 근처에서 꼬치구이집을 운영하는 일본인 주인 아저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곳이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는 너스레와 함께 서울을 몇 번 가봤다고 자랑삼아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손님이 질문하기 전에 먼저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사카는 ‘일본은 이렇고 저렇다’ 라는 식의 나의 편견 아닌 편견을 고쳐준 도시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나를 알게 해주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벚꽃의 만개(滿開)가 시작되고 있을 지금의 오사카 여행은 유머가 넘치는 오사카 사람들의 입담 속에서 일본 아닌 일본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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