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필요 없다”건국대·한국외대 등 총여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아

  자리를 잃어가는 여학생 대표 기구
  대학들의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등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현재 서울시내 주요대학 중 총여가 아예 폐지된 곳은 건국대와 한국외대이며, 총여라는 기구는 있으나 그 자리가 비어있는 대학은 서울시립대와 성균관대다. 고려대는 총학생회 산하 여학생위원회에서, 서울대는 학내상담소나 단과대별 여성모임에서 총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강대는 총학 산하 여학생협의회조차 입후보가 나오지 않아 사실상 총여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총여는 대학 내에서 여학생의 권익 신장과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 자치기구다. 총여는 주로 1980년대 학생운동 내에서 여성들이 담당했던 조직을 기반으로, 성차별과 각종 불이익으로부터 여학생을 보호하고 대표하기 위해서는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공감대 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권이 신장된 오늘날 한쪽 성별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기구가 필요하냐는 반론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없애거나 유명무실화되거나
  건국대는 지난달 26일(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총여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까지 건국대 총여는 입후보자가 없었다. 건국대 총학 이병준 사무국장은 “이전에 총여가 들어섰던 시기에도 활동한 내용이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며 “전학대회 당시 단과대학 대표자들 사이에서 그동안 실효성이 없었던 총여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와 이를 표결에 부친 결과, 대의원의 80% 이상이 찬성했다.”고 밝혔다. 건국대 총학은 총여가 맡는 업무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학 산하에 성평등위원회를 만들 계획이다. 이 사무국장은 “성 문제에 있어서 여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성적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국대 성평등위원회는 이번 학기 동안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운영 방안을 논의한 후, 1학기 말부터 방학 중에 준비를 마쳐 2학기에 공식적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최근에 총여를 폐지한 건국대 외에도 △서강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등은 총여가 없다. 한국외대의 경우 총여는 물론이고 총학 산하 여성위원회나 별도의 여성 모임도 없는 상황이다. 성균관대에선 지난 4년간 총여 후보는 있었지만 당선되지 않았고, 올해는 후보도 나오지 않았다. 성균관대 총학 측은 “명목상으론 총여라는 기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총학이 총여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서울시립대도 이와 비슷한 형편이다. 서울시립대는 회칙 상에 총여가 있지만 13년 동안 입후보자가 없었다. 서울시립대 총학 이경주 부총학생회장은 “오랜 기간 총여가 들어서지 않아 학생들은 총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는 총학 산하에 총여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한 여학생협의회를 두고 있지만, 후보가 나오지 않아 그마저도 공석이다.

  여성 배려 필요 vs 총여가 꼭 필요한가
 
서울시립대는 건국대와 같은 시기인 지난달 26일(화) 전학대회에서 총여 폐지 안건을 표결에 부치려다 정족수 부결로 회의가 무산됐다. 서울시립대 이 부총학생회장은 “회칙을 세련되게 개정하는 차원에서 총여 폐지 안건을 포함시켰다.”며 “총여가 없어지더라도 총학 내 복지국과 학생복지위원회가 총여의 역할을 충분히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 이라고 전했다.

  서울시립대를 비롯해 △동국대 △연세대 △홍익대에서는 총여 존폐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총여가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의 학생들은 여전히 총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정경대학에 재학 중인 A학생은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여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총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B학생은 “여학생휴게실 같은 시설을 만들어서 여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등 좋은 취지로만 운영된다면 당연히 총여는 필요하다.”고했다.

  반면 총여 운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폐지를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C학생은“교내에서 여학생에게 불이익이 가는 일이 없을뿐더러, 총여가 있으면 남학생들은 오히려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연세대 인문대학에 재학 중인 D학생은 “총여를 별도 기구가 아닌 총학 산하기관으로 두는 게 예산이나 능률면에서 효율적일 것 같다.”며 “학생대표 단체가 두 곳이나 있으면 운영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연세대 이과대학에 재학 중인 E학생은 “여성의 문제를 여성들끼리만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며“여성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생각하고 같이 의논하는 형식의 총여가 됐으면 좋겠다.”는 중립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총여는 성 평등을 위한 기구”
  현재 서울시내 주요대학 중에서 총여가 존재하는 대학은 본교를 포함해 △경희대 △연세대 △한양대 △홍익대 정도다. 연세대 총여 윤소영(식품영양학·4) 회장은 “총여의 존재 자체가 사회에서 성 평등이 아직 완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방증한다.”며 “성 평등 지수를 학생들 스스로 점검하도록 하고, 성 평등을 지향하는 인식을 주는 것이 총여가 있는 의미”라고 말했다. 각 대학의 총여 측은 총여가 독립적인 여성모임이나 총학 내 기구로 흡수되는 경우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홍익대 총여 양다희(법학·3) 회장은 “예전에 2년 정도 총여가 꾸려지지 않아, 학칙에 따라 여성국이라는 총학 산하기구가 활동했었다.”며 “그 기간 동안 총여가 맡는 자궁경부암 백신사업이나 여학생휴게실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성 관련 사건사고가 났을 때 학생들을 대변해 학교 측과 갖는 회의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생 투표과정을 거쳐 선출되는 총여는 대표성을 갖지만, 모임이나 총학 산하기구는 그 역할이나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

  본교 총여 류지연(사회복지·4) 회장은 “아직도 학내에서 교수와 제자간이나 선후배 간에 성폭력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이런 문제에 있어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은 총여만이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류 회장은 “여성들의 권익이 많이 향상됐으며 여성들의 이권만을 보장하는 기구는 이제 필요 없다고 말들을 하는데, 총여는 여성들만의 이익 기구가 아니라 평등을 얘기하는 기구다.”라고 말했다.

  학생회 향한 무관심이 자치권 약화시켜
  대학의 총여가 사라지거나 영향력이 줄어드는 추세를 두고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여학생의 권리가 신장돼 총여가 존재할 필요성이 없어진 건 아니다.”라며 “총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학생회 자체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이 학생회에 관해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지 않은 데다, 일반적으로 취업 위주의 고민을 하다 보니 학생회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