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ESPN 축구해설위원 박문성(회계·93) 동문

 
 지난 9일(목) 약속 장소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니 그는 SBS ESPN과 인터뷰를 분주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날카로운 대답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의 프로정신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99년 축구잡지 <베스트 일레븐>의 기자를 시작으로 2002년 부터 iTV 경인방송 축구해설위원, 2004년부터 MBC ESPN 축구해설위원, 2006년부터 현재까지 SBS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문성(회계·93) 동문을 만나보았다.
 

본교 회계학과를 졸업하셨는데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제가 원래 숫자를 싫어해서 고등학교 시절에도 문과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숭실대학교 회계학과 1학년에 들어와서 회계학 원론이란 전공 도서를 폈는데 책의 절반 정도가 숫자더라고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곧바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책도 읽고 여행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며 재미있게 대학시절을 보냈어요. 특별한 활동이라고 한다면 총학생회 부학생 회장으로 활동을 했다는 거겠죠. 그 외에는 다른 학생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게 평범한 생활을 했어요. 축구에 대한 관심도 보통 스포츠를 좋아하는 학생들 수준이었죠.
 
'축구 인생'을 시작하다
 

회계학 학사로 졸업했지만 축구전문기자로 활동하셨다고요?

 
 대학 진학을 할 때 자신이 정말 원하는 학과로 진학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요. 보통 자신의 성적을 고려해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게 되죠. 사실 저도 회계학과로 진학했지만 회계와 관련된 일을 할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졸업을 할 즈음엔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게 됐죠. 그러다가 기자라는 직업을 떠올렸어요. 당시만 해도 기자는 한 가지 일에 대해서 깊은 전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두루두루 알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직업이었어요. 그런데 미래에 세상이 다양화되고 세분화되면 한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기자가 필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또 제가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그냥‘기자’가 아닌‘스포츠 전문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1999년에 기자스쿨이라는 학원을 다니며 기자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교육과정을 이수할 즈음에 <베스트 일레븐>이라는 축구잡지에서 학원측에 기자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 왔어요. 원장 선생님이 저를 추천해서 제 이력서를 보냈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더군요. 그런데 그때가 여름이었어요. 저는 학원에서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 차림으로 있었는데 당장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거예요. 제가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면접을 볼 수 없다고 했더니 그쪽에서“베스트 일레븐은 자네처럼 자유로운 젊은이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그 상태로 면접을 봤어요. 그렇게 면접에 합격해서 일주일 뒤부터 기자 활동을 시작했고요.
 

축구해설위원들은 축구선수 출신이 대부분인데, 비선수 출신으로서 어려움은 없나요?

 
 2002년부터 iTV 경인방송에서 본격적으로 축구해설을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비선수 출신이 해설위원을 했던 전례가 없었어요. 축구해설은 의례적으로 이용수 교수님이나 차범근 감독님, 신문선 위원처럼 축구선수 출신들이 하고 있었죠. 과연 비선수 출신인 내가 해설을 해도 될까 하는 막막함이 조금은 있었어요. 하지만 선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해설을 못할 것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을 해요. 유럽의 유명 축구클럽의 감독 중엔 비선수 출신이 많아요. 그래도 전혀 문제가 없잖아요. 한국 영화계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워요. 영화감독들은 보통 영화배우 출신이 아니잖아요. 감독과 배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직업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스포츠 분야에서만 아직 이런 편견들이 남아 있어요.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것이 해설을 할 때 유리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그뿐이거든요. 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해설위원으로 활동함에 있어 불가능이 아닌 불편함이 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선수출신보다 더 노력해서 극복하면 그만이에요.
 
천직을 만난 이 남자, 매 순간이 행복하다
 

축구해설위원이라는 직업에 만족하시나요?

 ‘나는 운이 정말 좋다, 복 받았다.’고 항상 생각해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책을 보면 주인공이 일이 너무 힘든 순간에 상사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해요. 그러자 상사는 지금 너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 수만 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죠. 어떤 직업을 갖든지 그 일이 전혀 힘들지 않거나 항상 만족스러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직업엔 힘든 순간이 다 있어요. 제게도 힘든 순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분야에서 일을 하며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하고 있으니까 제게는 최고의 직업인 거죠.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크게 세 가지 범주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가, 자신이 잘 하는 일인가, 그 일이 가치와 보람이 있는가가 바로 그것이죠. 물론 세가지 모두 만족하는 직업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이 중 두 가지 조건만 충족시켜 준다면 그 일은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제 경우가 그렇죠. 제가 해설을 잘하는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해설을 하는 것이 스스로 재미있게 느껴져요. 게다가 주위에서 제가 일하는 것을 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인정해 주시니까 보람도 있어요. 이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죠. 부수적인 부분도 있어요. 해설위원을 하면 제가 보고 싶은 경기를 제일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어요. 유명 축구클럽의 경기를 볼 수 있고 세계적인 선수를 만날 기회도 생기죠. 또 축구가 세계적인 스포츠다 보니 일을 하며 육대주를 모두 가봤어요. 내가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과연 이런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축구 해설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최근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리버풀의 공격수인 수아레즈가 상대팀 첼시의 수비수 이바노비치를 깨문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해설을 해 오면서 여러 번 황당한 상황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만큼 황당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박지성 선수가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에서 활동했던 2005년 당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 2차전이에요. 이 경기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경기 후에 다시 봐도 소름이 돋더라고요. 지금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실감을 못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선수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골을 넣는다는 것은 꿈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무대에서 박지성선수가 AC밀란이라는 세계적인 명문구단을 상대로 골을 넣었으니 놀라운 일이었죠.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일단 축구에 대해서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요. 제가 해설을 한지 12년이 됐는데 어느 순간은 축구라는 것이 조금 보이고 알 것 같다가도 한 순간 무서울 정도로 하나도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축구는 역시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죠. 축구 칼럼도 쓰고 있는데 글을 쓰는 일이 할 만하다가도 한 순간 한 줄도 못 쓸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죠. 지금도 누군가 제게 축구 전문가나 해설위원 같은 명칭을 붙여주면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요. 앞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제게 붙여주시는 명칭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요.
 
 현재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관심을 직업으로 연결시키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축구의 경우만 봐도 전문기자, 에이전트, 평론가, 해설위원, 심판 등 다양한 영역의 직업이 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이 직업들을 선택하고 준비할지를 배울곳이 없어요. 이 부분에 있어 제가 멘토가 돼서 그들과 소통하며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교육 프로젝트도 해 보고 싶어요.
 
"후회를 남기느니 실패를 해라"
 

본교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하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실패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도 일단 도전을 하고나면 최소한 후회가 남지 않아요.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못하게 되면 마음속 한 모퉁이에 그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어요. 나중에는‘그때 그 일을 하지 못해서 내가 평생 이렇게 사는구나’라는 지독한 후회가 남아요. 도전을 일단 하고 나면 현실에 막혀서 실패하더라도 쉽게 돌아서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후회가 없으니까요.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어요. 후배 기자들이나 방송국 후배들을 보면 사실 기능적인 면에서는 다들 비슷해요. 요즘에는 모두들 잘 하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기능적인 면보다 감각적인면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순간적인 센스나 판을 이끌어 가는 능력같은 것이죠. 대화를 조금만 나눠도 저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 있잖아요. 이런 감각적인 능력은 타고난 면도 조금은 있지만 대부분 경험에서 나와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잠깐에도 강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후배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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