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태에 들고 일어난 총학생회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제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소속 직원들이 인터넷 상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린 정황들이 드러나며 불거졌다. 선거 개입은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사건의 주요 관련자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해당 국가정보원 직원에 대해 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학 교수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건에 대한 투명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이어 몇몇 대학 총학생회(이하 총학)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6월 20일(목) 서울대 총학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건국대 △경상대 △경희대 △광주교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동국대 △부산대 △서울과기대 △성공회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 △한양대 총학 등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지난달 25일(일)에는 서울대 총학을 중심으로 △건국대 △경희대 등 전국 10개 대학 총학이 대학생시국회의를 구성했다.
 

11개 대학 중 9개대학, 의견 수렴 과정 전무
  그러나 시국선언에서 정작 해당 학교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부재하거나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경상대 △경희대 △광주교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동국대 △서울대 △서울과기대 △연세대 △전남대 △한양대 총학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시국선언을 한 총학은 없었다. 특히 서울대와 연세대를 제외한 9개 총학에서는 시국선언을 하는 데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생략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9개 총학의 시국선언은 총학과 중앙운영위원회, 단과대학 학생회장 등의 간부들이 모여 진행한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경희대 총학 관계자는 “학생들의 의견은 따로 조사하지 않았지만 총학이 운영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시국선언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서울대와 연세대 총학 또한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와 연세대 총학은 시국선언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참여자가 각각 1300여 명과 785명에 불과해 저조한 참여율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총학 관계자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학생 수가 부족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여론 수렴 과정에 학생들 불만
  이에 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과기대에 재학 중인 ㄱ(기계자동차·4) 군은 “총학에서 시국선언을 했는지조차 몰랐다.”며 “총학생회는 학생 대표인데 학생들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점에 기분이 나쁘다.”고 밝혔다. 이어 “투표나 최소한 설문 조사라도 시도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전남대에 재학 중인 ㄴ(행정·1) 양 또한 “총학이 학교를 대표해 임의대로 시국선언을 진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합리적인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다면 학생들의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연대생 203명,
시국선언 반대연합 결성

  연세대의 경우 여론 수렴 과정에서 참여 학생 수가 적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학생 203명이 ‘시국선언 반대연합’을 결성했다. 이어 지난 7월 9일(화) 인터넷 반대연합 홈페이지에 시국선언 반대 성명서를 게시하고, 시국선언에 대한 재 여론조사를 총학에 요구했다. 이들은 △설문조사 참여율 부족 △사전공시 부족 △오프라인 투표 부재 △총 투표 부재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이에따라 설문조사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이들은 “총 투표를 통한 의견 수렴이 어렵다면 학생회가 학생을 대표해 시국선언을 할 일이 아니다.”라며 “총 투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무리해서 시국선언을 강행하는 것은 날치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ㄷ(아동가족학과·2) 양은 “시국선언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시국선언 과정에서 지나치게 총학 위주였다는 점에 동의한다.”며 “단과대학별로 세분화해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고 말했다.

 

방학 앞두고 준비기간 빠듯… “여론 조사 무리였다”
  총학들은 시국선언 여부를 결정하는 준비기간이 짧아 여론조사를 실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전남대 총학 김성후 집행국장은 “시국선언은 시의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짧은 기간에 시국선언 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의견 수렴 과정에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세대 총학 관계자 역시 “여론 수렴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면서도 “시간만 조금 더 있었다면 학생들의 의견을 더 들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국대 총학 곽호낭 선전국장은 “타 대학들이 서둘러 시국선언을 하는 상황에서 빨리 결정을 내리다 보니 여론 수렴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시국선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시국선언에 대한 협의가 주로 방학기간에 이뤄졌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총학들의 시국선언은 학생들의 방학이 시작하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주로 이뤄졌다. 광주교대 총학 김동후 간부는 “시국선언에 대한 논의를 할 때는 이미 방학기간이었기 때문에 교내에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며 “그 상황에서 총회나 총 투표 등을 실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밝혔다. 경상대 총학 관계자도 “방학이 다가오는 즈음에 논의를 시작했고 시국선언도 농촌 봉사활동을 출발하는 날 했다.”며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못해 아쉽지만 당시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경기대의 경우 총학 내에서 협의를 통해 시국선언 성명서를 만들었지만, 방학기간 동안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하지 못해 발표를 보류했다. 경기대 총학 관계자는 “학생들의 의견 없는 시국선언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투표나 설문조사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시국선언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본교 “의견 수렴 없이
시국선언 하지 않을 것”

본교 총학 “의견수렴 없는 시국선언 없을 것”
  본교 총학은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고 지난 7월 1일(월) 국정원 사태 국정조사에 대한 지지와 엄중한 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만 게시했다. 앞으로 시국선언 참여 여부에 대해 총학 이재필 집행위원장은 “아직 시국선언이 완전히 끝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계속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 수렴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총학이 시국선언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다 보면 결정이 느려질 수도 있지만 시의성보다는 의견 수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만약 시국선언을 하게 될 경우 여론 수렴 방법으로는 총 투표나 학생 10% 정도가 참여하는 설문조사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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