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숭대시보 기자로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이 말을 본보가 1100호를 맞은 지금 하고자 한다. 한국 최초의 대학신문은 본보, 숭대시보가 맞다.

  본보가 한국 최초의 대학신문인 것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나 두산백과 등 여러 백과사전에 기술돼 있다. 1912년에 처음 발간됐다고 하는 백과사전의 내용과는 달리 사실 본보는 1919년 4월 4일에 발간됐다. 이는 "1919년에 박형룡 초대 편집국장이 4월 4일 창간호에서 기독교를 전도했다는 죄목으로 잡혀가고, 이 사실을 보도한 주필 우호익을 경찰서에서 호출했다"는 학교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부는 당시의 숭대시보의 원본 등 증거자료가 없어 본보가 최초의 대학신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숭실의 역사를 간과한 것이다. 본교는 1938년 평양에서 폐교한 상태로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그 후 남북이 분단되고 학교의 많은 자료가 평양 숭실에 그대로 남겨진 채 서울 숭실이 건립됐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평양에 숭대시보 자료가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러는 1956년에 발간된 숭대시보의 호수가 제1호라고 기록돼 있기 때문에 이것이 숭대시보의 창간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1956년의 숭대시보 1호는 ‘창간 1호’가 아닌 간행을 중단했던 신문을 계속해 간행한다는 뜻인 ‘속간 1호’다. 1956년에 본보 편집국장을 맡았던 이중 전 편집국장은 “1956년의 발행은 창간이 아니라 속간이며, 숭대시보의 제호를 그대로 쓴 것도 19년의 숭대시보를 계승하겠다는 의미다.”라고 숭대시보 90주년 기념회에서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숭대시보가 한국 최초의 대학신문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본보가 1100호를 맞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는 ‘한국 최초’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대학신문이 되고자 노력할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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