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이베이를 다녀 온 후배가 하는 말. “선배님, 타이베이는 정말 재미없던걸요.” ‘재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낮과 밤이 모두 즐겁고 오감을 만족시켜 주는 도시가 타이베이였기 때문이다.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도시에서 재미를 논하는 것 자체가 큰 실수이며 자만이 아닐 수 없다.

  중화 문화의 보고이며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고궁박물관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중국 최고의 명필로 일컬어지는 왕희지(王羲之)의 글이 눈에 들어오고 가공되지 않은 돼지고기 덩어리와 비슷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육형석(肉刑石)도 보인다. 중국 5천년 역사의 축소판을 나는 이곳 타이완 고궁박물관에서 봤다. 말로만 듣던 중국 왕조의 각종 유물에 눈이 즐겁고 머리가 상쾌해진다.

  타이베이는 미각을 자극하는 도시다. 타이완의 국민 메뉴라고 불리는 뉴러우몐(牛肉麵)을 점심에 먹고 샤오롱바오(小龍包)로 유명한 딩타이펑에서 저녁을 먹는다. 중독성이 있어 계속 먹고 싶어지는 음식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이 음식들을 하는 곳이 있지만 타이베이에서 먹는 맛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 나면 발걸음은 벌써 야시장으로 갈 것을 재촉한다. 스린예스(士林夜市)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야시장이다. 시장 입구부터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상점과 노점상이 잘 조화를 이루어 공존의 미학을 만들어 낸다. 새로운 냄새를 풍기는 길거리 음식의 낯선 빛깔들이 국어시간에 배운 공감각적 표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열대과일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한류 열풍을 넘어 이제는 국제적인 음식이 된 떡볶이도 있다. 우리나라 아이돌 스타의 음악이 들리는 것은 기본이고 국산 화장품 회사의 매장에는 현지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 또한 반갑고 뿌듯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시장의 규모는 상당히 커서 걷다보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는데 이럴 땐 발마사지로 잠시 피곤을 풀 수도 있다.

  타이완 최고층인 101타워에서 타이베이 시내를 내려다 본다. 장개석 총통과 모택동 주석의 긴 항쟁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왠지 현대사의 굴곡이 느껴진다. 체제로 분단된 한반도가 생각난다.

  중국 대륙이 가진 섬 중 가장 큰 섬인 타이완. 섬으로서의 타이완과 당당한 독립국가인 중화민국 타이완의 사이에서 긴 생각에 잠겨본다. 타이베이에서 뜬금없이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고 권력의 한계를 생각한다. 이것도 타이베이가 주는 오감 중 하나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