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쥐
  영화 <박쥐>는 프리즘과 같다. 어떤 빛을 투영하든지 간에 시선을 끄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박쥐>를한 장르로 정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화는 때에 따라 구구절절한 멜로가 되기도 하며, 피와 살인이 난무 하는 전통 스릴러가 되기도 한다. 뱀파이어가 된 사제 ‘상현’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활과 영생을 다루는 종교 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다. 거기다 블랙 코미디의 요소까지 담고 있다. 영화 속 태주의 대사에서 나왔듯 상현의 뱀파이어는 제법 귀여운 구석을 가지고 있다. 엄연한 뱀파이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다. 성직자로서의 신앙심을 놓지 못한 뱀파이어는 확실히 새롭다. 살인을 금기시하며 링거 속의 피를 빨아 마신다. 송곳니조차 없다. 완전무결한 이 뱀파이어는 옛 친구 강우의 아내 ‘태주’를 만나면서 욕망과 쾌락을 갈망하게 된다.

  사랑과 신앙심의 기로에서 결국 상현은 욕망을 선택하게 된다. 상현이 욕망을 선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화는 타락과 죄책감에 초점을 맞춘다. 단적인 예로 박쥐는 부감 샷을 사용한다. 쉽게 말해 높은 위치에서 인물을 잡으며 하강하는 이미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욕망이 주는 쾌감이 하나의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큼 역설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피를 향한 욕망에 휩싸여 태주의 목을 빠는 상현의 모습은 영화 속 타락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상현은 피를 통해 태주를 살리지만 끊임없이 후회한다. 자신의 피로 부활시킨 생명은 아이러니하게도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욕망을 선택한 상현의말로는 비참했다. 그들 단 하나의 약점인 빛 아래,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들을 연결해 주던 매개인 신발만을 덩그러니 남긴 채 말이다.

  <박쥐>는 욕망에 이끌려 타락하는 인물들을 강렬한 영상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 강렬함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박쥐를 쉽게 잊기는 힘들다. 그만큼 오랜 시간 눈에 머무르는 영화가 바로 박쥐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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