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섭 교수(글로벌통상학과)
  우리는 은연중에 세뇌당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런 것일까. 모든 종류의 예술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도시가 있다. 그 이름은 파리.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유명한 과학자와 정치인들까지도 파리를 거쳐 갔다. 파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도시이기 이전에 인류 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위인들의 성지(聖地)다.파리는 피카소, 쇼팽 같은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고뇌를 반추(反芻) 하는 장소였으며, 마리 퀴리에게는 두 차례의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잉태시킨 곳이며, 마르크스와 레닌에게는 사상적 자유를 누릴 망명지였으며, 저우언라이(周恩來), 호치민(胡志明)같은 아시아의 지도자들에게는 조국의 새로운 개혁 청사진을 구상하게 했던 곳 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파리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도시이기 이전에 생각하며 느끼는 것이 먼저인 도시다.

  세느강 위를 오가는 바토 무슈(Bateaux Mouches)에서 바라본 에펠탑의 낭만, 루브르 박물관의 영원한 미소 모나리자, 오르세 미술관 최고의 소장품인 밀레의 만종, 샹젤리제 거리의 즐거움 리도쇼, 몽마르뜨 언덕의상쾌함, 콩코드 광장과 노트르담 대성당에 서려있는 문학의 향기, 그리고라 데팡스(La Defense)의 모더니티. 파리는 어디부터 봐야 할지 계획을 짜는 데만도 긴 시간이 걸린다. 언젠가부터 무계획의 계획’을 철칙으로삼아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했던 나에게조차 파리는 어떤 순서로 구경할 지를 먼저 질문했다.

  물론 파리가 좋은 것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관광지 곳곳에 숨어있는 날치기범과 지하철역을 넘다들며 관광객들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꾼 들이 간혹 여행의 즐거움을 훼손하기도 한다. 신고를 해도 고압적이고 거만해 보이는 파리 경찰들의 모습은 예술 도시 파리의 이미지를 반감시킬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조차 삶과 생활의 일부라고 여기는 파리지앵(Parisien)들의 여유에서 다시 한 번 큰 놀라움을 느낀다. 소소한 범죄마저 삶의 일부로 보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그러나 형편없는 발음으로 내뱉는 불어 인사 몇 마디에 입꼬리가 위로 향하는 그들의 미소에 나의 난감함도 꼬리를 감춘다.

  유럽 여행의 시작점보다는 종착지로서의 파리에 방점을 찍어 본다. 파리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파리를 떠나기 싫어지거나 다른 도시들이 자칫 파리의 거대한 그림자에 묻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도시를 돌고 돌아 마지막에 도착한 파리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미학을 느끼게 해준다. 한 도시가 보여주는 혼란함과 괴팍함, 화려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황당함. 이런 모든 것이 프랑스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C’est la vie(그것이 인생이다)” 한 마디에 녹아드는 도시 파리를 비로소 이해했다. 파리는 또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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