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5시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2시간, 그리고 책 보며 공부하는 17시간. 이 모든 시간들은 누군가의 하루 일과였다. 그에게는 오로지 책과 공부가 전부였다. 그렇게 공부에 올인한 결과 본교 행정고시 첫 합격자가 됐고, 그 길로 여러 자리를 역임하며 저작권법의 ‘대가’가 됐다.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국립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의 관장인 임원선(행정·81) 동문을 만나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도전적인 삶을 들어보았다.

 

  교련복이 닳을 때까지 공부했던 대학시절

  숭실대학교 행정학부에 재학하던 시절, 그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였다. 어쩌면 그에게 장학금은 당연한 것이었고 당연해야만 했다. 장학금은 그에게 있어 목적이 아니라,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가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지금은 사라진 교련복만 입고살았어요. 졸업할 때쯤에는 그 질긴 교련복이 자연스럽게 해질 만큼….” 대학생이 되어도 교련복만 입었던 이유는 단지 옷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부의 효율성을 위해 생활을 단순화하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공부를 하기 전 내가 몇 시간이나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서 시간을 재봤어요. 하루에 16시간에서 17시간 정도 책상 앞에 앉아 있더라고요.” 그렇게 하루의 반 이상을 공부에 매달린 결과 그는 행정학부 수석 졸업생과 동시에숭실대학교 행정고시 첫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남들보다 다르게,
  빠르게, 자세하게

 

  전문성 있는 ‘제너럴리스트’

  그의 학력은 특별해 보인다. △숭실대학교 행정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프랭클린피어스법과대학교 대학원 지적재산권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까지 행정 고시에 합격한 후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던 그는 다양한 학문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꾸 도전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런 거 없어요.”라며 당황스러운 답을 준 그.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평소의 신념이 잘 맞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을 흔히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해요. 그만큼 발령받는 부서가 자신이 일했던 부서와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문적일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서 잘하지’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는데, 바로 그 경우가 제 경우였죠.”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 그가 발령받은 부서는 어문과였다. “그 당시 제가 맡았던 일이 컴퓨터를 활용한 국어 연구였어요. 컴퓨터가 글자를 코드로 인식하는데, 그 코드를 배열하는 일이었죠. 그 일을 3년 반 동안 하다 보니 한글 워드프로세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됐고 이를 통해 컴퓨터나 디지털 통신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았어요. 그런데 한창 일을 배우고 있는 도중 다시 저작권과로 발령이 났죠.”

  저작권과로 발령이 난 후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비록 공무원이 짧은 기간 동안 발령된 부서에서 일하지만 저는 무슨 일을 해도 업무에 대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 전문적인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요.”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그는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시절에는 저작권 공부를 했고,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도 2년간 근무했다. “유학을 갔다 오고 보니까 어느새 저작권이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돼 있더라고요. 분명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콘텐츠를 책이나 CD로 보급하는 게 전부였는데 영화, 드라마, 음악, 책 모든 것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유포되기 시작한 거죠.”

  저작권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전문적으로 저작권법 공부를 마치고 들어온 그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저작권이 어떻게 바뀔 것이며, 어떤 점이 기준이 될 것인지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 저한테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아까 말했다시피 ‘저작권은 그 사람이 잘하더라’라는 말의 주인공이 저로 인식됐고, 이로 인해 보통 공무원들보다 저작권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됐고요.” 그는 WTO 협정, 한·EU와 한미 FTA 이행을 위한 저작권 개정을 총괄하는 등 국가 저작권법과 관련된 중대사에 많은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문화관광부 저작권과 과장,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정책관을 역임하고 <실무자를 위한 저작권법>이란 책도 집필했다. 꾸준히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우다 보니 국립중앙도서관장 자리에도 앉게 되었다.

 

 

  다양한 책의 변화는 남겨진 숙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 됐다. “모든 길은 휴대폰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겼듯이 컴퓨터, TV, 그리고 책까지 모두 휴대폰으로 들어가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책이 전자화된 형태를 우리는 ‘E-book’이라고 부른다.

  그는 최근 9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최신 기술을 활용한 전자책 전시 및 체험기회를 기획해 디지털북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지만 누군가는 종이책에 향수를 느껴 전자책을 멀리하고 과거의 종이책을 찾는다. 책의 형태를 떠나 모든 책들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이런 두 가지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무엇이 더 유행인가 그런 걸 따질 게 아니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쓰면 되지.” 그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책을 선택하는 것도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종이책이 유리한 콘텐츠, 전자책이 유리한 콘텐츠가 있어요.전자책이 유리한 것 중에서는 백과사전이 있어요. 백과사전은 현재 출판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어요. DB(Data Base)화 돼버렸으니까요. 또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그 예죠. 이게 읽기 힘든 이유가 주석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이 경우에는 전자책으로 읽는다면 중간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바로 찾아볼 수도 있어요. 이런 것처럼 책의 유형별로 유리한 콘텐츠들이 다 달라요. 결국 모든 건 소비자의 선택인 거죠.”  

  국립도서관장으로서 그에게는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단행본은 많은데 저작권 문제로 인해 학술, 연구자료 시스템이 많이 약해요. 국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서관이 이런 현실에 부딪히는 게 많이 안타깝죠. 사람들이 어떤 책, 어떤 자료를 선택하는지 예측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항상 최상, 최대
의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인 거죠.”

 

  모교에 하고 싶은 말 

  숭실대학교는 그에게 있어 배움의 기회를 알려준 곳, 그리고 시골 사람도 주눅들지 않게 해준 따뜻한 곳으로 기억된다. “최근에 학교를 들른 적이 있는데 학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과거에는 뭔가 숭실대만의 특색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에게 숭실대만의 특색은 향토적인 것이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숭홍전(숭실대·홍익대 정기전)이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홍익대도 갔었고 다른 때는 공부하러 연세대를 간 적도 있었는데 왠지 다른 학교와 다른 숭실대만의 특색이 있더라고요. 아늑하고 학생들 간의 경쟁도 덜 했고 무엇보다 제가 촌놈인지 몰라도 시골같은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이유 때문인지 그는 현재 행정학부 동창회장을 맡으며 숭실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또한 그는 도서관장답게 본교의 ‘독서명문대학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학교가 학생에게 책을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줘야 된다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읽는 데 머리말만 읽고 책을 놓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만큼 어려운 책을 학생들이 읽게 되면 책을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이럴 때 학교가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특정한 책을 주제로 연극을 해도 좋고, 시대적인 배경을 직접 체험해 보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태백산맥>이라면 남쪽 지역이 주 배경이니까 그곳을 탐방하는 거예요. 이처럼 학생들이 몸소 체험하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방법인 것 같아요.”

 

  백 마디 말보다
  한 권의 책

 

  인생의 단 한 가지 조언

  그의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완강한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이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할까요?” 그는 냉정했지만 냉철한 답을 했다. “솔직히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세상은 너무 달라졌는데 과거는 어땠지, 옛날은 이랬어’ 이런 말들은 의미가 없어요. 지금 20대들이 겪는 어려움과 과거의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은또 다른 종류예요. 물론 어른들의 말이 재밌고 흥미진진할지는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그런 말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어른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생했다, 힘들겠다’는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것뿐이죠.” 

  하지만 단 한 가지, 강조한 것이 있다. “책을 읽으세요. 책은 읽을 때마다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져요.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선생님이 아들한테 책을 한 권 선물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지금만 읽는 게 아니라 중학교를 가서도 대학을 가서도 다시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말이 정말 맞아요. 독서는 평생을 두고 해야 돼요. 대학 다닐 때 동기들과 시작 수준은 비슷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격차가 계속 벌어져요. 그 핵심이 주로 책인 거죠. 지금 학생들도 직장인이 돼서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면 이 사람이 책을 꾸준히 읽는지 아닌지가 보일 거예요. 그 사람 생각의 깊이, 말이나 어투에서 모두 묻어나거든요. 이렇게강조해도 안 읽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지금 20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책을 많이 읽어라’ 이것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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