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의 대화록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용인즉슨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 내용이 공개될 경우 굴욕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 은폐를 지시했고 그로 인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초본이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대화록을 수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상회담의 내용이 굴욕적인 것을 떠나서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치욕까지 떠안을 수 있어 더 큰일이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며 후자는 주관적인 사실을 의미한다. 역사가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수집 정리하여 재구성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주관적 해석이 개입하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역사는 우리의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올바른 미래로 나아가게 해주는 디딤돌이 돼준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담당하던 사관들은 이러한 중요성을 잘 알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역사를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태종 4년에 있었던 일이다. 태종이 사냥을 하다 말에서 떨어졌는데 이에 민망함을 느낀 태종이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목격한 사관은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는 태종의 말까지 기록하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런 곧은 사관들의 노력 덕에 완성이 되었고 지금까지 남아 현재 우리들에게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물론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된다면 한낱 연대기만을 열거한 열거 목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남긴 E.H카 역시 역사의 주관성을 중시하였다. 역사란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만 남은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하지만 그 말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만들라는 말이지 왜곡된 이야기를 만들라는 것 은 아닐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대화록 수정 여부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설사 판결이 났다 하더라도 그 판결이 정말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판결인지 왜곡된 이야기를 만들려는 또 하나의 방책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공신력이 있어야 할 부분에서 진실공방이 오가는 것은 국민으로서 많이 안타깝다. 조선시대 사관이 왜 그렇게 융통성 없이 태종의 말을 낱낱이 적어 놓았는지 그 이유를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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