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중 최다 장기기증인 최정식(사회복지대학원·04졸) 목사

  ‘사람이 살아있을 때 할 수 있는 생체 기증은 신장, 간, 골수와 헌혈이 있다. 국내에서 신장과 간을 기증한 사람은 30여 명 가량 되지만 골수까지 기증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그 유일한 이가 바로 최정식(사회복지대학원·04졸) 목사다. 그는 30세의 만성신부전 환자를 위해 자신의 한 쪽 신장을 기증했고, 간경화로 고생하는 50세 주부를 위해 자신의 간 일부를, 18세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기증했다. 여기에 2006년까지 무려 186번의 헌혈을 했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 10월 4일(금) 보건복지부와 KBS가 주최한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헌혈을 통해 첫 생명 나눔을 실천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지난 1979년 그는 학교로 온 헌혈 버스에서 한 헌혈을 시작으로 2006년 마지막까지 기록상 총 186번 헌혈했다. “예전에는 헌혈을 2달에 한 번씩만 가능해 186번이 많은 수치였지만 요즘에는 2주에 한 번씩 헌혈을 할 수 있어 내가 한 횟수는 조금밖에 안 돼.” 그는 자신의 나눔에 생색내지 않았다. 그는 2개월마다한 번씩 헌혈을 했는데, 헌혈할 때가 되면 자꾸 헌혈의 집에 가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본교 사회복지대학원에 다닐 때도 중간·기말고사 시험이 당장 내일 있더라도 헌혈하러 안 가고는 못 배겼다. “헌혈할 시기가 되면 시험을 보더라도 시간을 내서 꼭 헌혈하러 가야 직성이 풀렸어.”

  186번째 헌혈을 한 지난 2006년 12월 23일 이후로 더 이상 그는 헌혈을 할 수 없게 됐다. “B형 간염에 걸린 것도 아닌데, B형 간염 바이러스 균이 몸에 들어왔다가 나간 흔적이 있어 못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괜찮은데,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적십자사에서 안 된다고 해서 못하고 있지.” 그는 헌혈을 하기 위해 몇 번의 재검사를 받고 백신을 맞아서 항체도 형성하게 했지만 현재까지 헌혈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장 하나를 떼어주다

  그의 왼쪽 배에는 아직도 한 뼘 길이의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그가 33세였던 1993년, 만성신부전 환자를 위해 자신의 한쪽 신장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신부전증 환자들은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몸의 노폐물을 소변을 통해 배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이 신장이식 수술을 하게 되면 정상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게 된다.

  그가 기증을 하기로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 그는 영락교회에 다녔는데, 영락교회에서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갖다 놓은 유인물이 있기에 보고 기증하겠다는 신청을 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신장 기증을 어렵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어. 자연스럽게 신청을 마음먹게 됐지.”

  신장 기증 수술을 하기 위해서 그는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당시 그는 은성수도원의 수도자였다.그래서 동료 수도자들에게 서명을 받아 제출했지만 병원에서는 가족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술 날짜가 잡힌 후 형에게 연락을 해서 ‘수술하게 됐으니까 서명 좀 해 달라’고 했다. “그때까진 가족들이 몰랐죠. ‘수술 날이 잡혔는데 싫어도 서명을 해주겠지 어쩔거야’라고 생각했죠.” 그의 가족들은 그를 걱정했지만 수술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았다고한다. 그가 수술할 당시에는 신장 수술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기술도 지금에 비해 떨어졌지만 다행히 그는 수술이 아주 잘 됐다.

  신장에 이어 간의 일부를 내어주다

  신장을 내어준 지 10년 후인 2003년 11월 그는 다시 한 번 배에 칼을 댔다. 간경화로 고생하는 50세 주부를 위해 간의 일부를 흔쾌히 내어준 것이다. 당시 그는 본교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신장 기증에 이어 간 기증을 했다고 뉴스에 나왔어. 그 때까지 나는 신장만 기증이 가능한 줄 알았지 간도 가능한 줄은 몰랐어.” 그는 그날 뉴스를 보고 기증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어 간 기증 서약서를 제출하게 됐다.

  “다른 사람은 마음먹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어렵지 않았어. 뭐든지 사람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불교 용어도 있잖아.” 간 기증 수술이 끝난 후 마취가 풀리니 수술 자국이 난 곳이 아팠다. 신장 기증 수술에 비해 두 배 가량 되는 큰 수술 자국으로 인한 고통을 그는 예수를 통해 이겨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얼마나 아팠겠냐는 생각을 했지. 예수가 당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체험해 봤어.”

  그는 신장과 간을 기증받은 이들의 나이만 어림잡아 알 뿐 연락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수술할 당시에 ‘내가 너에게 장기 줘서 내 덕에 살았지 않냐’며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내 장기를 받아 건강해졌다는 소식을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뿌듯해.”

  타인을 위한 1,000cc의 피

  2005년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골수 기증을 위한 조직적합성검사(HLA)에서 그의 골수와 딱 일치하는 백혈병 환자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1993년 신장을 기증하던 해 골수 기증 등록을 한 지 12년 만이었다.

  “골수 등록을 해 놓고 실제로 기증할 거냐고 물어보면 무서워서 포기하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해. 심지어 가족끼리도 기증하기로 해놓고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더라고. 그런데 나는 하고 싶어서 계속 기다렸던 사람이니까 바로 한다고 수락했어.” 그는 2만 5천분의 1의 확률로 운이 좋아 골수 기증을 하게 된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기뻐했다.

  골수 기증을 허락한 후부터 그는 이식환자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피를 잘 생성하게 하는 철분제를 먹으며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썼다. 수술일이 정해지면 이식환자가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하기 때문에 기증자가 감기라도 걸리면 수술 날짜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그는 무엇이든 조심했다.

  그리고 골수를 이식할 때 피를 많이 빼 수혈을 하기 위해서 그는 수술 전에 자신의 피를 많이 만들어놔야 했다. “400cc씩 2번에 걸쳐 총 800cc의 피를 뽑아 놓았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수술 직후에 자가 헌혈을 했지.” 그의 골수를 이식 받은 환자는 18세 정도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을 위해 1,000cc 정도의 골수를 뺀 셈이다. “백혈병 환자가 어리면 500cc 정도로 골수를 적게 뽑는데, 나는 고등학생에게 줬기 때문에 1,000cc 정도의 골수를 뺐었어.”

  사회복지는 최고의 대학에서

  2002년 42세가 되던 해 그는 본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그는 숭실대에 합격하기 전 상명대에 합격해 입학 등록을 완료한 상태였다. “상명대는 목회자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숭실대보다 학비가 훨씬 저렴했지만 취소를 하고, 사회복지는 숭실대가 제일 좋다는 말에 당장 이 곳으로 마음을 결정했어.”

  그는 주간에는 교회에서 일을 하고, 오후 6시 50분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나는 야간 수업을 들었다. 단 한 수업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들은 결과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심지어 그는 2004년도에 졸업을 한후 3년을 더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사실 2년 다녀 봐야 얼마 못 배우잖아. 내가 책을 보면서 공부해도 되지만 직접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좋으니까. 야간 수업이라 저녁에 와서 청강을 했어.”

  사회복지에도 전공이 여러 개로 세분되지만 그는 노인 복지, 교회 사회사업, 청소년, 상담 등 어느 한 분야에 치중하지 않고 두루 공부했다. 또한 그는 교수들과도 친했다. “당시에 나도 42세의 적지 않은 나이다 보니 교수들이 나하고 동년배도 있고 어린 사람도 있어서 모두 친하게 잘 지냈어.”

  욕심을 버리기 위한 1日 1食

  현재 그는 사색출판사 대표로 그가 스승인 감리교신대학교 故김흥호 목사가 40년간 강의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내기 위한 작업 중에 있다. 그는 故김흥호 목사를 따라 1989년부터 현재까지 24년간 1일 1식을 생활화 하고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제일 큰 욕심인 식욕을 버리기 위해 1일 1식을 시작하게 됐어. 식욕을 다스리다보니 아무래도 욕심이 줄어들었지.” 또한 그는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것을 죽이는 살생을 덜 하게 돼 자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통 저녁을 챙겨먹으며, 주로 현미를 먹는다. “가공해서 맛이 좋은 인조보다 덜 가공한 음식이 맛은 없어도 훨씬 좋아.”

  한편 그는 지난 2006년 장기이식관리센터에 췌장 기증 등록을 했지만 현재까지 허가되지 않은 상태다. “장기이식관리센터 쪽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췌장을 이식하는 것이 위험도가 높아 되도록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나에게 해달라는 연락이 오면 당장 할 준비가 되어 있어.”

  골수 기증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라

  현재 많은 대학생들은 백혈병 환자를 위해 골수 기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작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골수를 기증하는 것을 사람들이 굉장히 어렵게 생각해. 근데 사실은 간단한 거거든. 헌혈보다는 약간 힘들다고, 어렵다고 할까?” 그가 골수 이식을 할 당시에는 엉치뼈를 뚫고 골수를 빼냈는데 현재 골수 기증은 마취도 안하고 헌혈하는 방식으로 간단해졌다고 한다.

  이어 그는 타인에게 사랑을 실천할 때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두려움을 갖지도 말라고 했다. “원래 무엇이든 따지면 못하는 거야. ‘이게 위험한 거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못 해. 뭐든지 사랑은 조건 없이 해야 돼. 기독교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아가페’라고 하거든.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은 신적인 사랑이니까 무조건적인 거지. 이것 저것 따지며 조건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을 하지 말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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