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의 운명은 휩쓸리기 마련이다. 자아도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학습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타인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교육된 체제에 길들여진 모습을 자아라고 생각하며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1984년 분단 독일, 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의 임무는 국가 이념과 상반된 사상을 가진 인물들을 도청하고, 증거를 잡아 신고하는 것에 있다. 임무에 있어 철저한 냉혈한인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국가 이념에 충실한 삶을 산다. 이야기는 비즐러가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기 시작하며 가속화된다.


 감독은 이 과정에서 ‘훔쳐보기 모티브’를 사용하는데, 연극-비즐러-관객에 걸친 액자식 구조는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일조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비즐러가 관찰하는 연인을 훔쳐보고, 나아가 그들을 관찰하는 비즐러의 삶 또한 엿보게 된다. 비즐러의 감정 변화가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인의 삶을 관찰하던 비즐러가 그들의 사랑을 보며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듯, 보는 이 역시 비즐러의 삶에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평생을 몸 담아왔던 직위를 버리고, 우편배달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비즐러의 선택 역시 그렇기에 작위적이지 않다. 결핍되었던 감정을 발견하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선택한 비즐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진실하다.


 비록 서로 간에 한 마디 대화도 없었던 타인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비즐러는 연인의 삶을 마주보게 되고, 나아가 자신과 소통하게 된다. <타인의 삶>은 올곧은 신념과 행동이 서로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들의 삶을 훔쳐본 이들도 마찬가지다. 체제가 자신에게 준 타인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원했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결국 타인의 삶은 곧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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