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도서관을 찾은 나는 도서관자치위원회(이하 도자위) 측에서 건물 내 정숙을 위해 부착한 A4 용지의 인쇄물들을 읽던 중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지금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라고 적힌 대단히 '계도적인' 코팅 인쇄물들이 도서관 복도에 수십 장 붙어 있었다. 심지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는 섬뜩한 글귀마저 보인다.

  우리 모두는 이런 식의 언어폭력을 이미 접한 경험이 있다. 친구를 적대적 경쟁자로 삼으라던 고등학교 교실에서, 낙오자를 도태시키는 입시 지옥의 학원에서. 그리고 지금 이런 인쇄물들은 노량진 고시촌이나 강남의 재수학원이 아니라 서울 소재 대학 도서관 벽면에 버젓이 붙어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인쇄물 부착의 시행 주체가 도자위라는 학생 자치 단체라는 점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그들은 도서관 이용자들이 오로지 현실 상황만을 위해 공부한다는 점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소란을 피우는 학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수다나 떨다 백수되면 네 책임이야, 알지? 그럴 바엔 차라리 남들한테 피해나 주지 말라고.”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로 만드는 자들은 기성세대도, 학교 관계자도 아닌 학생들 자신인 셈이다.

  조용한 도서관을 만들고자 하는 도자위 측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종용하기 위한 방식으로 취업과 학점 경쟁이라는 생존 문제를 거론하여 겁박하는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구호는 이미 유명무실해졌을지라도, 적어도 주체적이고 성숙한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이지 않은가. 불안과 공포에 의해 강요되는 비극적인 침묵이 진정 도자위가 바라는 정숙한 도서관의 이상인지 나는 묻고 싶다.

  “그 학교의 도서관을 보면 그 학교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열람실 앞의 한 글귀는 대단히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도서관 측은 학생의 자율적 개선능력을 부정한 채, 커다란 자물쇠 하나를 채움으로써 이미 본교의 수준을 드러내고 말았다. 도자위는 단순 정숙을 촉구하는 내용을 제외한 도서관 내 모든 인쇄물을 당장 떼어내야 한다. 대학생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아니다. 그리고 대학 도서관은 경마장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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