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경주까지

   베어드의 4차 전도여행은 1894년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로 부산을 출발하여 기장, 울산, 경주를 돌아 부산으로 되돌아오는 경상남도 동해안 지역의 전도였다. 구체적인 여정을 보면 부산에서 출발해 울산, 병영을 거쳐 경주에 갔다가 다시 경주에서 울산, 남창, 기장, 동래, 부산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동행한 사람은 어빈 의사, 고서방, 마부 김서방 외 2인이었다. 세 마리의 말을 이용했기에 마부가 세 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베어드는 줄곧 걸어서 여행을 했고 의사 어빈은 안장이 있는 말을 타고 갔다. 나머지 말 두 필에는 서적, 침구류, 음식을 실었다. 여행에 필요한 돈은 30냥을 지불했다.

   5월 2일 울산에 도착한 베어드 일행은 비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어서 책을 팔고 환자를 돌보는 일로 소일했다. 베어드가 울산을 찾은 이유는 선교지부를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함이었음을 그의 일기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여행의 목적 하나가 내륙의 선교지부를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 일이다. 많은 면에서 이곳이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땅은 비옥하고, 이곳은 동래만큼은 아니지만 인구도 많은 편이다.”

   이로써 베어드가 부산에 근거지를 두고 경상도 여러 지역을 여행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울산은 “한국 선박이 이 곳에서 부산까지 빈번히 왕래하며, 바람만 잘 불면 하루만에 갈 수 있다”고 기록할 정도로 지리적 요건이 좋은 곳이기도 했다. 베어드는 몇 차례의 영남지역 순회전도여행을 통해 대구와 울산을 마음에 두게 되었다. 그 후로도 그는 울산에 대해 많은 관심과 호감을 표시한다. 그래서 대구보다는 울산에 선교 기지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의사인 어빈은 풍토병에 대한 주의를 주고, 조언을 한다. 이에 베어드는 울산에 대한 마음을 접는다.

   베어드는 “비옥한 골짜기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울산 지역을 하루동안 여행한 후에 경주에 도착했다. 일행은 경주로 향하면서 울산의 병영을 통과했다. 지금은 좌병영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한창 복원중에 있다. 돌로 성을 쌓아 놓은 모습만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그 위에 올라서니 울산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수많은 공장지대와 주택가, 그리고 넓은 벌판에 위치한 비행기 활주로가 인상적이다. 베어드는 여기를 “언덕 위의 도시”라고 했다.

   베어드 일행의 이번 여행에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어빈 의사와 함께 하면서 의료 봉사를 한 점이다. 5월 3일의 일기에는 환자는 많지 않지만 “꾸준히 몇 명은 있다”고 기록하였고, 울산을 떠나 남창이라는 지역에서는 하룻밤을 보내면서 “우리들은 거기에서 환자 몇 명을보았다”고 기록할 정도로 의료 봉사에도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베어드 일행이 환자를 돌보았다고 하는 남창은 울산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지역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지금의 도로 곁에 있는 작은 도로가 그나마 옛길의 흔적일 뿐이다. 남창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부산을 향해 출발한 베어드 일행은 정오쯤에 기장에 도착했다. 기장읍내에서는 일할 만한 기회가 안 보여서 서둘러 동래로 갔고 온천에서 호주 여선교사들을 만났다고 일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동래는 지금도 온천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도시이다. 허심청이라는 온천장을 중심으로 아주 번화한 모습을 하고 있는이 지역은 온천이라는 것 외에 옛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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