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금요일, 영어 강좌 취재를 위해 한 강의실을 찾아갔다. 두꺼운 전공 책을 꺼내는 학생들 사이로 혼자 앉은 학생 옆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같이 보자는 기자의 부탁에 옆에 앉은 학생은 “봐도 모를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책장을 넘겼다. 책을 펴자 기하학적인 기호들과 그림 그리고 무수한 영어단어가 빼곡히 차 있었다. 수업이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어로 수업을 이어갔다. 갑자기 옆에 앉은 학생이 불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학생이 켜는 것은 메신저가 아니라 사전이었다. “원래 이렇게 사전을 이용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다른 학생들은 쉽게 넘어가는데 저는 영어를 잘못해요. 나중에 공부할 때 번거로우니까 수업시간에 찾아요.”라고 말했다. 75분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앉았던 학생이 말했다. “의외로 잘 들으시네요. 솔직히 안 자고 있었던 애들도 수업을 하니까 들은 거지 거의 독학하는 거예요.”

  너도나도 외국어 강좌 확대하기

  본교는 학생들의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외국어 강좌 수를 확대하고 있다. ‘2012학년도 자체평가 결과보서’에따르면 본교 외국어 강좌 수는 △2009년: 345개 △2010년: 339개 △2011년: 427개 △2012년: 443개로 지난 4년간 100여 개가 증가했다. 총 강좌 대비 외국어 강좌 비율은 △2009년: 14.1% △2010년: 13.6% △2011년: 16.1% △2012년: 16%로 나타났다.

  현재 본교의 39개 학과 중 제2외국어 전공 학과(△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중어중문학과 △일어일본학과)와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를 제외한 33개 학과가 영어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전공기초과목 및 전공과목 (전공필수, 전공선택)에서 원어 및 영어 강좌를 3개 과목(9학점 이상) 이상을 이수하라는 학교의 방침 때문이다. 영어영문학과를 제외한 학과 중 영어 강좌 비율이 높은 학과는 △평생교육학과: 86%(14개 중 12개) △국제법무학과: 73%(15개 중 11개) △글로벌통상학과: 30%(72개 중 21개)다.

  타대 역시 글로벌 역량 강화를 목표로 외국어 강좌 수를 확대하는 추세다. 동국대의 경우 영어 강좌 수가 △2008년: 218개 △2009년: 401개 △2010년: 601개로 3년간 400개가 증가했다. 서강대는 △2008년: 125개 △2009년: 229개 △2010년: 285개 △2011년: 300개로 4년 동안 180개가 늘어났다.

  영어 강좌는 늘어나는데 학생들 한숨만

  이처럼 영어 강좌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영어 강좌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이해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평생교육학과 ㄱ양은 “1학년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수업을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난이도도 높아지고 교재와 수업이 모두 영어로 이뤄져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평생교육학과 ㄴ군은 “1학년 때도 전공을 모두 영어로 수업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생각할 때가 많다.”며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한 법인데 공부의 시작이 되는 1학년 때는 교재를 영어로 하든지 수업을 영어로 하든지 하나만 영어로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평생교육학과는 2012년 학부생 교과과정 만족도 부분에서 하위권인 34위를 기록했다.

  타 학과 학생들 또한 영어 강좌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ㄷ군은 “공대 수업은 한국어로 해도 이해하기 힘든 과목이 많다.”며 “원서 자체가 어렵다 보니 공부를 하는 데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화학공학과 ㄹ군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각각 다르니 이해하는 수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전공이기 때문에 안 들을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교수들 “영어 강좌는 암묵적 요구”

  학교 측에 따르면 영어 강좌는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할 시에 개설된다고 밝혔다. 영어 강좌를 맡는 교수에게는 강좌 당 50만 원의 교재연구비를 지급하며 교원업적평가제도에서 5점을 추가로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교수들은 실질적으로 영어 강좌가 교수 자의에 의해 개설되는 것은 아니라고 토로했다. 경통대 A교수는 “영어 강좌를 하던 담당 교수가 못하게 되어 대신 맡게 됐다.”며 “학과에서 영어 강좌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공대 B교수는 “자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학과 자체 내규에 의해 영어 강좌를 하게 됐다.”며 “학교에서 교재연구비를 지급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한국어로 수업하는 것이 교수의 입장에서도 편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IT대 C교수는 “학교에서 강요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학과 내 흐름에서 교수에게 영어 강좌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부분도 있다.”고 답했다.

   학과마다 느끼는 영어 강좌 필요성 제각각

  영어 강좌에 대한 교수들의 생각은 학과의 특성에 따라 상충하고 있다. 일부 학과 교수들은 영어가 갖는 경쟁력을 고려해 영어 강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대 D교수는 “경영학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일반 회사에서는대부분 영어로 쓰인다.”며 “미래에 어차피 사용해야 할 텐데 미리 배워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생교육학과 최성우 학과장은 “평생교육학과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학과다.”라며 “과의 특성상 기본적인 어학능력은 필요하기 때문에 교수님들의 동의 하에 거의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영어로 하는 수업이 오히려 학과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입장도 있다. 공대 E교수는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수업을 영어로 하자니 학생의 입장으로서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굳이 공대 수업을 영어로 할 필요는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공대 F교수는 “장기적으로 볼때 대외적으로 영어가 경쟁력을 갖는 것이 사실이기 떄문에 이 점을 고려하면 필요한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학생들이 당장 수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 영어 강좌가 일반강좌보다 효율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학생들 역시 영어 강좌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반대 의사를 표한 학생들은 영어 강좌가 갖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IT대 ㅁ양은 “학생들의 영어 강좌의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효과도제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교가 영어 강좌를 무분별하게 확대하기보다는 학습효과와 수업 만족도를 고려해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대 ㅂ양은 “영어 강좌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학문적인 성격이 강하다.”며 “실용적으로 쓰이기에는 한계가 있어 생활 속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오히려 영어 강좌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학생들도 있다. 국제법무학과 ㅅ양은 “1학년 때는 힘들었지만 고학년이 되다 보니 영어 강좌에 대한 이해도도 늘고 영어 실력 또한 향상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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