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는 과학기술을 맹신하는 유토피아적 관점, 그것을 부정하는 디스토피아적 관점의 공존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유토피아의 반대말, 미래 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 영화를 새롭게 만드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80년대 개봉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블레이드 러너>는 SF 장르의 보편성을 과감하게 벗어 던진다.

  2019년 로스엔젤레스는 도시와 복제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이다. 어둡고 무거운 도시사회의 모습이 등장하며 영화는 전체적으로 건조한 분위기를 가진다. 이야기는 인간들이 복제인간인 ‘레플리컨트’를 우주 속 식민지로 보내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곳에서 복제인간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주동한 ‘넥서스 6’라는 4명의 레플리컨트들이 지구로 잠입한다. 반란이 일어나자 추격 역시 시작된다. ‘블레이드 러너’라고 불리는 전문제거형사가 레플리컨트를 추적한다.

  2013년의 관점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낡은 영화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화려하고 세련된 CG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는 특별하다. SF속에 철학을 담은 최초의 영화이자 복제인간의 감정을 그린 첫 번째 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부여한 로봇의 감정은 다른 소설과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 로봇들의 감정을 인간의 미래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온갖 악행을 행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여전히 인간 본성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영화 속 레플리컨트다. 그들이 보여주는 감정들은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비애를 드러낸다.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된 이래로 많은 SF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블레이드 러너>는 여전히 영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감정은 레플리컨트와 닮아가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우리의 삶 또한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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