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현수막이 없다. 빨간색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도 없고 연인들과 성탄전야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도 없다. 세상에 이렇게 한산한 성탄전야가 있다니. 아니 한산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초라하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는 것 같다.

  베들레헴에서 성탄전야를 보낼 수 있다는 남들이 가져보기 힘든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나는 이 초라한 도시에 실망했다. 온갖 상업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한 나의 뇌는 베들레헴의 이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테러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곳곳에서 총을 들고 검문을 하는 군인들의 위협적인 행동들은 내가 과연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에 와 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게 한다. 곳곳에 보이는 동물의 배설물은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다.

  내가 타고 온 차가 신기했는지 차 주위로 몰려드는 아랍 아이들은 하나같이 팁을 줄 것을 요청한다. 차를 안전하게 지켜 줄 테니 보호비 명목 돈을 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성탄전야를 즐긴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빨리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된다. 오기 전에 현지에 사시는 분들로부터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고 와서 그나마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 탄생 교회에 도착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구유를 중심으로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하지만 이미 상해 버린 나의 마음에는 감동이 몰려오기보다는 정말 그랬을까라는 까칠한 의구심이 몰려온다. 첫인상은 그 도시의 전체 이미지를 나쁜 것으로 일반화해 버린다.

  해가 저물고 세계 각국에서 온 성가대들이 도시의 한 곳에서 성탄 노래를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작지만 도시전체로 울려 퍼지는 은은한 성가 소리. 성가 소리는 내 머리 속에 장막을 치고 있던 잘못된 생각을 순식간에 걷어냈다. 짧은 순간이 주는 큰 깨달음이랄까.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닌 섬기려고 온 자의 한없는 거룩함을 느꼈다. 아무런 장식도 없다. 아무런 미사여구도 이 도시에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극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다.

  나에게 1994년 베들레헴에서의 성탄전야는 지금까지 가장 거룩한 날로 기록되었다. 이 도시로 내딛는 첫발은 초라했지만 가장 감동적인 마지막 발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성경에 나오는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라는 구절이 머리에 떠오른다. 젊음의 한 때 베들레헴에서 성탄전야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신의 섬세한 배려이고 큰 뜻이 아니었을까. 다가오는 성탄절에 베들레헴에서의 감동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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