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국회의원 최동익(사회복지·81) 동문
   지체장애와 시각장애, 두 개의 장애를 가진 소년의 학창시절은 악몽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딱지를 치던 친구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그를 속여 딱지를 모두 따가기 일쑤였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장애로 꿈을 포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밝은 세상으로 꺼내 주길 바라던 그는 결국 직접 정치인이 돼서 그가 겪었던 어두운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자라 장애인의 권익을 대표하는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공동대표이자 제19대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최동익(사회복지·81) 동문을 만났다.

   
   어떻게 장애를 가지게 되셨나요?

  저는 두 개의 장애를 갖게 됐어요. 첫 번째로 두 살 때 의료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됐고, 두 번째로는 초등학교 때 녹내장과 백내장을 함께 앓아 시각 장애인이 됐죠. 사실 한 쪽 다리가 불편했을 때는 심적으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떠난 버스에 손 흔드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 상황에서 최대한 열심히 살고자 했죠.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학생이었어요. 몸이 조금 불편했지만 네 살 때 한글을 다 익힐 정도로 똑똑했거든요. 학창시절의 최고 학생은 공부 잘 하는 학생 아니겠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나름 인정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잘 해나갔어요.

   그런데 시각 장애를 얻게 됐을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학생이었는데, 눈이 안 보이니 공부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없어진 거죠.

   친구들도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아니야, 네가 졌어.”라며 제가 눈이 안 보인다고 저를 속였어요. 저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따질 길이 없었죠. 그렇게 저를 속이는 친구들 때문에 하루에 딱지 5만 개, 구슬 5천 개를 다 잃은 적도 있었어요.

   
   언제부터 정치인을 꿈꾸셨나요?

   제가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서울맹학교 재학 당시였어요. 그 시절 학교에서 장애학생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겪으며 정치인을 꿈꾸기 시작했죠.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중학교 1학년 5월쯤이었어요. 당시 체육시간에는 동복 체육복을 하복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시점이었죠. 그런데 우리 반에 집안이 어려운 친구가 있었어요. 집이 가난하니까 하복 체육복을 살 돈이 없어서 계속 동복 체육복을 입고 체육시간에 나갔어요. 어느 토요일 날, 점심 먹고 집에 가려고 신이 나 있는데 체육 선생님이 저보고 그 친구를 불러오라고 하는 거예요. 이유는 뭐 뻔했죠. 그 친구의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체육복 왜 안 갈아입느냐고 때렸을 거예요. 밥 먹던 친구가 제가 전해준 말을 듣고 ‘이걸 다 먹으면 끌려가서 맞아야 하는구나.’라는 걸 알고 있는, 마치 팔려가는 송아지의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또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 아이를 데려가야 하고요. 참 착잡한 심정이었죠.

   지금도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악몽이에요. 참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죠. 그냥 그 시절 누군가가 우리를 어둠 속에서 건져내 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그 누구도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제가 직접 정치인이 돼서 우리가 겪었던 슬픈 현실을 바꾸고 싶었어요. 아마 그 때부터 막연히 ‘정치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숭실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숭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나 친구가 있다면요?

   저는 숭실에서 두 명의 은사를 만났고 소중한 친구도 얻었어요. 어윤배 전 총장님과 박종삼 교수님, 그리고 친구 기용이요.

   어윤배 전 총장님은 학생들을 그렇게 들들 볶았어요. 항상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과 예리한 질문들을 하셔서 학생들이 많이 시달렸죠. 그 때 ‘사람을 어떻게 들볶을 수 있는가’를 배운 것 같아요. 당시 훈련받은 게 지금 국회에 들어와서 예리하게 질문하고 논점을 파고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죠. 그 때 총장님께서 정말 저를 잘 가르쳐 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박종삼 교수님은 정말 열심히 사세요. 제가 대학시절 옆에서 뵌 교수님은 3시간 수업을 위해 9시간을 준비하시는 분이었어요. 또 매 학기 정해진 커리큘럼을 그대로 이어가지 않으시고 가르치는 과목을 바꾸셨죠. 학생들을 위해서 늘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박종삼 교수님을 롤모델로 두고 살아왔어요. 학생 때는 저와 교수님의 사이가 바닥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면, 제가 계속 교수님을 인생의 모델로 삼아왔기 때문에 지금은 그 하늘과 조금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기용이 같은 경우는 정말 착한 친구예요. 기용이 아버님은 기용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셨어요. 그 공통분모를 통해 기용이와 같이 장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교회도 같이 다니고,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어두운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지금도 그 친구랑 저랑 만나면 그 때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용이는 지금 숭실대 전산원 사회복지학과에서 노인복지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 당시 우리가 꿈꿨던 세상을 각자의 분야에서 실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기용이는 저에게 인생의 동반자죠.

   그리고 숭실은 제가 도전으로만 생각했던 길을 현실로 만들어 줬어요. 대학 입시 때 단국대 특수교육학과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에 최종 합격했는데, 결국 숭실을 선택했거든요. 그 이유는 일단 특수교육을 전공해서 선생이 되는 건 죽어도 싫었어요. 저는 항상 개척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즐기는데, 선생은 일정한 틀과 규범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잖아요. 그리고 복지라는 게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장애인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복지를 전공하게 됐고, 그때 배운 내용은 지금 잘 쓰고 있죠.


   장애인으로 정치계에 뛰어들었는데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가장 힘든 점은 제가 시각 장애인이어서 사람들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거예요. 정치는 어떻게 보면 사람과의 관계거든요. 그런데 상대방이 나한테 와서 아는 척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못 찾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관계를 쌓는 게 힘든 점, 그게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국회는 여러 번 선출된 국회의원이 제일 인정을 많이 받고, 처음 선출된 의원 중에서는 지역구 의원이 힘이 있어요. 제일 대우를 못 받는 게 처음 선출된 비례대표 의원이죠. 그리고 비례대표 중에서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노동계라든가 그런 데는 나름대로 계파가 있으니까 인정을 받아요. 그런데 제가 속한 장애계는 선배 의원도 없고, 동료 의원도 없고 저 하나 달랑 있잖아요. 그래서 가장 힘도 없고, 나쁘게 말하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300명 국회의원이 같다고 해도 가장 밑의 급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가 되는 거죠.

   뭐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어요. 현실인 거죠. 그걸 극복해야 하는데, 사실 극복하기가 힘들어요. 다른 의원들은 마라톤을 뛸 때 반환점에서 출발을 했다면 저는 출발점부터 뛰어야 하는 입장으로 봐야죠. 여기서 제가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제가 뛰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또 뛰지 않겠어요? 그래서 출발선이 많이 뒤떨어졌다고 생각해요. 그걸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많이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장애인 최초 재선 의원을 꿈꾸다


   의원님의 꿈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모든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은 재선을 못했어요. 한 마디로 지역구 공천을 못 받은 거죠. 그래서 저는 장애인 비례대표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어요. 지역구 공천을 받고 싶고, 재선에도 성공하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노동파처럼 ‘장애파’라는 하나의 계파를 만들어서 후배 장애인 국회의원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어요. 사실 제가 장애인 중에서는 성공한 케이스일지 몰라도 정치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지역구 공천을 받고 재선에 성공하면 정치인으로서도 인정을 받게 되는 거죠. 정치인으로서의 인정을 꼭 받고 싶어요.


   숭실대에 재학 중인 장애 학생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신다면요?

   숭실에 있을 당시 박종삼 교수님께서 저희 장애 학생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박종삼 교수님이 했던 말씀 중에 “장애는 결론적으로 너희에게 약점이 아니다. 이제는 장애를 강점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라. 아마 너희에게 장애는 강점이 될 거다.”라는 말을 아직까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장애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공무원 채용 시에 가산점이 있다든지, 세금에서 혜택이 주어진다든지 장애인으로서 받게 되는 특혜가 많거든요. 또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나 장애인 일자리 사업 등 취업 과정을 비롯해 모든 사회생활에서 장애를 가진 게 일반 학생보다 훨씬 장점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그래서 후배 장애 학생들이 장애를 약점으로 인식하고 꿈을 포기하기보다,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해 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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