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뭉쳐서 꿋꿋하게 경기를 해냈다. 추운 빙판위에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이 운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날만 기다려 왔다. 그리고 2014소치 동계 올림픽,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컬링 선수들이 출전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 컬링열풍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 본교 컬링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처음 컬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중학교 때 “컬링이라는 종목이 있는데 이런 운동 한 번 해 보는 게 어떠냐.”라는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경기장에 가서 직접 본 후, 컬링 경기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게 됐어요.

   학교에 아이스링크가 없는데 훈련은 주로 어디에서 하시나요?

   태릉에 컬링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훈련을 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운동장이나 체육관을 활용해서 체력훈련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컬링장은 경북 의성과 태릉, 두 개 밖에 없어요. 전략 훈련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있었던 올림픽이나 선수권 대회 같은 큰 경기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태릉 훈련장을 나눠 쓰는 기준은 뭔가요?

   대관 회의를 해요. 대관 회의를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훈련을 하는 거예요. 시‧도 대표자들이 회의로 각자 시‧도에 훈련해야 할 팀이 몇 팀 있다고 이야기하면, 보통 그 수에 비례해서 연습 시간을 나누려고 하는 편이에요. 태릉은 원래 두 시트였는데 이번에 확장을 해서 세 시트가 됐어요. 한 타임에 세 개의 팀이 사용할 수 있는 건데,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훈련을 하면 서로 한 타임이라도 더 잡으려고 그래요.   새벽같이 나와서 첫 타임 연습을 하고, 또 몇시간 텀 두고 한 번 더 연습하고 이런 적도 있고요. 완전히 전쟁이에요. 경북지역 컬링팀만 빼고거의 다 태릉에서 탄다고 봐야 하니까요. 그래도 그런 건 코치님께서 다 정해 주셔서 저희는 정해진 시간에만 타면 돼요.

   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대학교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중고등학교 때에 비해서 등록금도 내야 하고, 전지훈련을 한 번 나가더라도 학교에서 지원을 안해 주니까요. 여러 경제적 부담이 겹칠 때 좀 힘들었어요. 원래 예체능 쪽이 등록금이 비싼 데다가 축구나 골프 같은 다른 종목에 비해서 학교에서 지원이 많이 없어요. 저희는 아직 비인기 종목이기도 하고, 입학만 특기자로 한 것이지 다른 부분은 일반 학생들이랑 거의 같아요.  

   저희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꾸준히 성적을 잘 내고 있는데 지원이 없으니까 좀서운해요. 오히려 이마트나 신세계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서 순위권 안에 들면 지원을 해주는데, 그렇게 후원받은 걸로 이번에 전지훈련을 다녀왔어요.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보람찼던 부분은 어떤것이었나요?

   요즘 컬링이 잘 알려져서 좋아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컬링 대표 팀이 올림픽을 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 좀 인정을 해 주니까요. 관중도예전보다 훨씬 늘었고, 카메라도 오고 그래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자리도 많이 생기고요. 그리고 컬링이라는 종목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아,네가 컬링 한다는 게 이거였구나.” 하고 인정해주시니까 기분이 좋아요.

   경기 도중 생겼던 비화가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평창 올림픽에 컬링 여자부가나가는 것이 확정이 되고, 남자부도 어떻게 될지모르는 상황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었어요. 그 선발전에서 1위를 해야 평창 올림픽에 나갈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 선발전이 있었던 시합장에 얼음이되게 안 좋았어요.

   우리나라는 컬링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스케이트 타는 빙상장에 시합장을 만들어요. 과녁을 긋는 것을 실로 한 다음에 거기에 색을 입히고 그 위에 또 얼음을 덮는 건데 그게 일정이 너무 빠듯하다 보니까 너무 급하게 만든 거예요. 얼음 위로 실이 튀어나와 있고, 얼음이 깨져 있고, 과녁이 동그랗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그랬어요. 스톤 위치가 1mm 차이로도 경기결과가 갈리는 건데 과녁부터가 확실하지 않은상태였고, 실이 튀어나와 있으면 스톤이 가다가 실에 걸려 버릴 수도 있어 문제가 됐어요. 그리고 과녁을 보면 옆에 조금 빈 공간이 있잖아요. 그 공간을 사람이 지나가지도 못 하게 그냥 벽면으로 만들어 놔서 스위핑(빗자루질)을 하려고 하면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명이 빠져야 하고. 사상 최고로 중요한 국가대표 선발전의 얼음이 그렇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선수팀에서 “중요한 국가대표 선발전인데 이런 여건 속에서 하면 실력으로 가는 게아니라 거의 운으로 가는 거다.”라며 전부 시합을 하지 않겠다고 나섰어요. 또 하루 만에 급하게 보수를 하느라고 경기가 하루 미뤄지기도 했었죠. 다 똑같은 조건 속에서 하는 경기니까 누가 더 좋고 나쁘고는 없었지만 조금 더 정확한곳에서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경기를 하면서 기싸움이 있지 않나요?

   기싸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런데 저희는 컬링부에서 거의 막내 쪽에 속해서 기가 많이눌리는 편이에요. 컬링은 선수층이 얇으니까 지금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저희가 중‧고등학생때 같이 하던 언니들이었고, 몇 년 동안 봐 온 사람들이거든요.

   그래도 어릴 때는 기싸움이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많이 커서 그런지 기싸움을 하기보다는 저희가 잘해야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상대팀한테 신경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저희 팀에만 집중하게된 거죠. 저희 코치님께서 저희에게 항상 스포츠맨십에 대해 강조를 하세요. “비겁하게 이길 바에는 차라리 패배를 하겠다.”는 주의라서 시합을 못해서 혼나는 것보다 시합 중에 비매너적인 행동을 하면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혼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각종 선수들이 다 모여 있을 텐데 태릉 분위기는 어떤가요?

   태릉도 선수들 연습하는 건 똑같아요. 신기했던 건 1층이 저희가 훈련하는 컬링장이고, 3층이하키랑 피겨, 쇼트트랙 훈련을 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김연아 선수가 막 왔다갔다하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그래서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어요. 그리고 배드민턴이나 양궁 같은 하계 종목 선수들도 많이 봐요.

    그 사람들도 운동선수인데 텔레비전에서 자주 마주치니 연예인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화장실에서 만났을 때 사인해 달라고 했던 적도 있어요. 그때 아니면 놓칠 거 같았거든요.

   컬링을 하면서 가장 감사한 분 한 분을 꼽자면?

   저희 감독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저희 감독님이 생활체육학과 윤형기 교수님인데, 이번에 소치 올림픽 때 SBS에서 컬링 해설을 하신 분이에요. 원래 컬링을 하면서 서울 경기권대학에 들어오기가 되게 어려워요. 컬링으로 학생을 받아주는 데가 거의 없거든요. 대학교에 컬링부가 있는 것도 성신여대랑 우리 학교뿐인데 지금 성신여대도 거의 안 뽑고 없어지고 있는 현실이에요. 그런데 저희는 교수님께서 컬링에 관심이 있고 꿈도 있으셔서 지금도 계속 받아주시고 있고, 항상 응원해 주세요.

   교수님께서는 컬링 선수 생활을 하신 건 아닌데 1994년 처음 컬링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 컬링에 관심을 가져오신 분이에요. 또 저희가 처음 입학했을 때는 지금보다 더 경제적인 상황이 안 좋았었는데 교수님께서 장학금이 있으면 최대한 저희에게 주려고 하세요.

   그리고 저희가 전지훈련을 가면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가는데 저희를 특기자 반처럼 만들어서 수업을 삼분의 일만 출석을 해도 F 학점은 면할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2년 전만 해도 영어회화 같은 수업은 전지훈련 한 번 갔다 오면 바로 F 학점을 받아서 피해가 되게 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셔 전지훈련도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됐어요. 교수님께서 시합 때 오셔서 추어탕이나 추어튀김, 복어 튀김, 막창 같은 영양식도 사주시고 항상 경기장에 들러 응원도 해 주세요. 저희 팀에 학교 지원이 없는 걸 교수님께서도 많이 느끼시니까 과에서 나오는 지원을 저희에게 몰아주시려고 되게 많이 노력하세요. 저희도 그만큼 성적으로 보답을 해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드리니까 죄송하죠.

   컬링을 하면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올림픽 출전하는 게 최대 목표죠. 국가대표 선발전은 매년 나가요. 소치 선발전 때는 3위 했어요. 1위 팀이 나가는 건데, 준결승전에서 지금 올림픽 팀을 만난 거예요. 거기에서 져서 3위 하고, 그분들은 또 결승전 가셔서 우승하신 거죠. 그분들 하고는 친분이 좀 있어요. 같은 지역팀이라서 운동할 때 맨날 옆에서 같이 봤어요. 지금도 태릉에 가면 매일 마주치는데, 올림픽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보고 정말 신기했어요. 맨날 보는선수들인데 지금은 연예인 같아요. 검색 엔진에이름 치면 프로필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저희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컬링은 별로 위험하지가 않아서 비교적 오래 할 수 있는 종목이에요. 캐나다 전지훈련을 가면 60대 정도 돼 보이시는 할아버지들이 지팡이 짚고 나오셔서도 머리 보호 밴드만 매시고 경기를 하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골프를 취미로 하고, 노인 회관에서 바둑 두고 하는 것처럼 거기는 골프랑 컬링이 서민 스포츠처럼 돼 있어요. 올림픽 나온 다른 나라 팀을 보면 나이가많은 분들이 많잖아요. 컬링이 원래 경력이나 연륜이 좀 많아야 유리한 스포츠예요. 심리적인 부분이 크다 보니까 아무래도 어린 선수보다는 나이 많은 선수들이 조금 더 정신력이 강하고요. 그래서 몸이 받쳐줄 때까지는 컬링을 계속 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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