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숭실 문화 반영 위한 문헌

  서울 숭실 재건 60주년을 맞아서 재건 초기 숭실의 모습을 우리대학 신문인 <숭대시보>로 되돌아보면서숭실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1950년대 <숭대시보>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 편집자

  한국 초유의 대학으로 설립을 본 숭실대학은 약 45년 전 기관지 <숭대시보>를 창간한 바 있으며 주필 겸편집엔 현 장로회 총신교장 박형룡 박사가 학생의 몸으로 활약하였으며 현 부학장 우호익 선생도 역시 <숭대시보> 초창기의 공로자로서 주필을 맡아본 바 있다.

  당시 일제 억압의 신음 속에서 허물어져 가는 민족 정기를 바로 잡고 위로주의 영광을 위한 경전한 신앙운동의 선봉에 서서 본지도 피눈물 나는 고력(苦力)과 투쟁을 다해왔다.

  순결한 민족애를 가슴에 품고 진리 악수(握守)와 그 전파의 봉화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여 음울한 겨레의 가슴에 빛이 되고 메마른 겨레의 영혼에 생명수의 역할하기에 땀 흘렸던 젊은 숭실의 기록이 말썽이 되어 주필을 비롯한 편집인이 일제 경찰서에 호출과 구류를 위하기 수(數)를 거듭하였으니 숭실혼이이루운 본보 <숭대시보>도 같이 형극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1925년 숭실전문학교로 학제 개편이 있자 제호를 <숭전타임스>라 개제하고 다시 그 정신과 필봉을 이었다. 기미운동을 전후한 모진 수난과 함께 본보가 걸어온 지난날의 발자취는 바로 치욕 민족의 축도였고 거기에 항쟁한 피의 기록이었으니 1938년 신사참배를 거절하며 진리에 순(順)하였던 본교의 피어린 운명과함께 원(元) <숭대시보>의 후신이요 본 <숭대시보>의 전신인 <숭전타임스>도 막을 내렸던 것이다.

  희라! 진리와 정의에 건립하지 않은 학원이 어디 있으리오마는 그 진리와 정의에 순한 학원은 숭실 대중(大中), 숭의의 3숭을 빼놓고 또 어디있는가. 1954년 4월 수도 서울에서 재건을 보고 한강변에 제2의 고향을 마련하는 본 대학이 어디까지나 숭실의 빛나는 정신과 전설을 계승하기에 그 본령을 가지는 바와 같이주후 1956년 10월 10일 제 59주년 탄생을 마지한 숭실의 돌날에 <숭대시보>가 이름조차 옛날처럼. 그 진리와 신앙에 순하고 정의와 인도에 철(徹)하고 불의와 사악에 거항(拒抗)하는 빛과 소금의 정신으로 1천을 바라보는 숭실건아의 진정한 대변지로서 또한 숭실문화의 종합적 반영의 문헌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기에 애끓는 부활성을 울리는 것이오니 숭실 교우 제위의 간절하신 기도의 성원과 숭실 학우 여러분의 아낌없는협조 편달을 바라마지 않나이다.

  1956년 10월 10일 속간 1호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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