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성적 세탁 방지법’ 추진에 학교도 학생도 우왕좌왕

  학점포기·증명평점 제도 폐지 바람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이 이번 년도부터 학점포기제도를 폐지하거나 F학점이 누락된 외부 증명용 성적표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학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본지가 조사한 서울 시내 대학 15개 대학 중 △건국대 △고려대 △국민대 △단국대 △숭실대 △한국외대 △한양대의 7개 대학이 이번 학기부터 학점 관련 학사제도를 개편했다. 또한 제도 개편을 잠시 유보한 경희대 또한 2학기부터 성적 관련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F학점을 일괄 삭제해 증명서를 발급하던 건국대, 고려대, 국민대, 단국대, 숭실대, 한국외대, 한양대의 7개 대학은 이번 학기부터 F학점이 제외된 이른바 ‘대외용’ 성적증명서 발급이 불가능해졌다. 학점포기제도를 폐지한 대학도 있다. 취득한 교과목 중 6학점에 한해 포기할 수 있도록 했던 고려대는 해당 제도를 폐지했다. 고려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따르면 이번 학기부터 수강한 교과목이 폐지되는 경우 외에는 학점포기가 불가능하다. 학기당 6학점까지 포기할 수 있게 했던 경희대는 오는 2학기부터 포기 가능 학점을 졸업까지 최대 6학점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반면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세종대 △연세대 △중앙대의 나머지 7개 대학은 교육부가 문제시한 상황과 거리가 멀어 성적 관련 학사를 개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강대 학사지원팀 관계자는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성적 인플레이션과 관련돼 문제된 상황이 없어 학사를 개편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학사 개편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교육부 일제히 따르는 대학들

  이러한 학교들의 갑작스런 학사제도 개편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하고, 전국 대학 337곳 중 76%인 225곳이 학생의 원 성적과 다르게 성적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빚어졌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은 각 대학에 이른바 ‘성적 세탁’을 막도록 하는 ‘학생 성적 관리 개선 방안’을 3월 말까지 마련하도록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 또한 ‘학점포기제도’나 ‘재수강 없이 F학점을 삭제하는 경우’, ‘졸업사정 시 F학점을 삭제해 주는 경우’를 모두 문제로 보고, 2014년 3월 이후 제도 개선이 미흡한 대학에 대해서 여러 시정 조치를 내리겠다고 공표했다.  또한 교육부가 시정 조치를 공표함과 함께 △대학 인원 감축 △국가장학금 2유형 축소 △교육부 지원 축소 △정부 재정지원 사업 참여 제한 △해당 학교 학생들에 대한 학자금 대출 제한 △자발적 퇴출 유도 등의 행정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자 여러 대학들은 급작스럽게 성적 관련 학사 제도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학교와 학생 모두 ‘혼돈 속으로’

  갑작스러운 교육부의 통보에 학교와 학생들은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 F학점 제외 성적표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던 한국외대는 지난달 4일(화), “성적 관리 지침 변경 공고”라는 제목으로 “교육부 지침에 따라 4학년 F학점 제외 성적표 발급이 중단되니 이번 학기 수강신청에 참고하기 바란다.”는 공지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공지는 같은 날 오전 10시에 있었던 4학년 수강신청보다 늦게 게시돼 학생들의 불만을 샀다. 결국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다음 날인 5일(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4학년도 1학기부터 주는 학점에만 개정안을 적용하고 이전 학사규정에 따라 이미 부여된 성적에는 소급적용하지 않을 것을 교무처에 요구했다. 이 결과 현재 졸업예정자와 졸업유예자까지는 변경 이전의 성적 관리 지침을 따르기로 협의했다. 이번 학기부터 F학점이 제외된 성적증명서를 발급하지 않기로 한 건국대는 공지사항을 통해 “2014년 3월부터 시행해야 하는 상황의 시급성 때문에 유예기간 없이 F학점 삭제 제도를 폐지하게 됐다.”며 “본래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하려 했지만 교육부의 조치에 따라 경과기간을 둘 수 없었음을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

 

  극단적인 변화, 끊이지 않는 불만

  갑작스런 학사제도 변경에 학생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희대에 재학 중인 김소정(영어통번역·3) 학생은 “2학기부터 학점포기 가능 학점이 한 학기 6학점에서 전체 학기 중 6학점으로 대폭 줄게 되는데, 예고도 없이 너무 극단적인 변화가 이뤄진 것 같다.”며 “학점포기 가능 학점이 갑자기 줄면 수업을 선택할 때도 듣고 싶은 과목보다는 점수를 잘 받을 것 같은 과목만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F학점 삭제 불가가 과거에 취득한 성적에도 소급 적용되는 건국대의 경우 이번 학기 복학한 몇몇 학생들은 당황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건국대 공대에 재학 중인 A군은 “군대에 갔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했는데, 학교에서 갑자기 들어본 적도 없는 제도를 시행한다고 F학점 삭제를 불가능하게 했다.”며 “미리 알던 학생들은 이전 학기에 재수강을 하면서 필요한 학점을 메꿔 놓았겠지만 이제 막 복학한 학생들은 그럴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학교 외에도 많은 학교가 바뀐 걸로 아는데, 이렇다 할 예고나 통지도 없이 학점에 관련한 학사제도를 갑자기 변경하는 건 학생들에게 너무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본교 또한 ‘교육부 방침 따르겠다’

  본교 또한 교육부의 지침을 따라 성적증명서, 학점포기제도 등 성적 관련 학사제도를 변경했다. 본래 우리 학교는 이른바 ‘대외용’, ‘취업용’으로 쓰이는 증명용 성적증명서에 F학점과 학점포기 과목, 재수강 과목을 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학기부터 증명용 성적증명서에도 F학점 과목과 재수강 과목이 표기된다. 또한 7학기 초 6학점까지 포기를 가능하게 했던 ‘학점포기제도’ 또한 폐지된다. 학사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목)부터 지난 4일(화)까지 8학기 진급 학생을 대상으로 6학점 이내로 학점포기를 허용했으며, 오는 4월 중에 2학기에서 7학기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학점포기 기회를 부여한다.

  이에 학교는 재수강 제도를 총 8과목에서 12과목으로 확대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몇몇 학생들은 학점포기제도가 폐지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문대 B학생은 “물론 학생 모두가 동등한 과정을 거쳐 학점을 받지만, 그 성적을 포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아쉽다.”며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노력하고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문대에 재학 중인 C학생 역시 “학점이 자신의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 건 상대평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번 결정된 성적을 억지로 고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이 다시 수강하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까지 앗아가는 건 불공평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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