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어렸을 적 유행했던 가요의 첫 마디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 버린 레코드 가게에서 이 경쾌한 노래가 퍼져 나오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곤 했다. 비록 나성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이 노래의 멜로디는 늘 기분 좋은 것이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나성에 가 보겠다는 작지만 굳은 다짐도 했다. 나성은 나에게 엘도라도같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원더우먼’이나‘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한 번쯤은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두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나성이었다. 

  소리로만 듣던 나성이 미국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뜻한다는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뜻은 없고 음만 빌려온 가차문자로 L.A.를 적으면 라성(羅城)이 되고, 이것이 두음법칙의 영향을 받아 ‘나성’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뿌듯해했던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난다. 더 이상 나성이 아닌 미국의 초거대도시 로스앤젤레스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던 1994년 1월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도시를 처음 방문했다. 두꺼운 옷으로 겹겹이 두른 나를 순식간에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로스앤젤레스의 훈풍. 천사의 날개 짓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사계절이 너무나도 뚜렷한 한국에서 살아온 나의 체질마저 바꾸어 주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방문할 때마다 한결같은 바람은 대지진의 악몽, 로드니킹 사건으로 촉발되었던 흑인 폭동, 한인과 흑인집단간의 오랜 반목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 불어 날려 버렸다. 도시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나온다. 로스앤젤레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인간이 만든 수많은 부정적인 사건 사고를 감추는 도시다. 천사의 속성은 원래 그런 것이다. 천사의 눈에는 천사만 보이게 되어 있다.        

  로스앤젤레스는 볼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어렸을 적 동경했던 모든 것이 미국적인 콘텐츠로 포장되어 있다. 미키마우스의 탄생지 디즈니랜드, 초호화판 거주지의 모든 것 비벌리힐스, 1990년대 초중반 한국 대학생들에게 특히 인지도가 높았던 UCLA, 할리우드 톱스타의 자취를 따라 거니는 워크 오브 페임(Walk of Fame),메이저리그의 대표 구단 LA 다저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 모든 것이 이 도시의 매력이며 자산이 된다.

  오래되고 전통적인 것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람, 그리고 미래의 톱스타를 꿈꾸는 젊은이가 있다면 로스앤젤레스로 가볼 것을 권한다. 하루가 모자랄 정도의 재미와 구경거리가 마음의 긴장을 풀어줄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기존 질서를 허물고 새롭게 탄생한 모던한 것의 집합체가 오래된 것만이 좋다는 생각에 일침을 가할 것이다. 천사의 멜로디가 스타로 환생할 것 같은 느낌. 나는 이런 느낌으로 로스앤젤레스를 즐겼다. 천사는 언제나 천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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