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부딪치려 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당장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

    본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성악을 시작한 그는 긴 세월의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다. 애벌레가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나비가 되듯이 그는 실패도, 시련도 수없이 겪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서 자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김민석(수학·86) 동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수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성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3학년 때, 1년 내내 수학 시험에서 계속 만점을 받았어요. 그 전에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말이에요. 그 흔한 참고서도 하나 보지 않았는데 점수가 잘 나오니까 수학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어요. 제 스스로 수학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진로를 수학 쪽으로 잡고 나니 고등학교 3년 동안 수학 공부가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재수를 하면 안 되고, 서울시 안에 있는 미션스쿨이어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숭실대를 왔어요. 그때 저는 오로지 수학자가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숭실대에 입학해서 1년 정도는 학교 합창단에서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합창단을 관두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제 대학 생활을 떠올리면 학교에서는 수학 공부를, 교회에서는 노래를 열심히 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런데 점점 심화되는 수학을 공부하고 있으려니 ‘내 머리는 안 되겠구나.’하는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강 시간에 빈 강의실에서 ‘내가 수학을 안 하면 뭘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렸어요. 그 노래 소리를 따라가 보니 채플을 하고 있더라고요. 합창단이 와서 노래를 하는데, 그 소리가 정말 아름답고 멋있었어요. 이때부터 제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거죠. '그래, 결심했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회자가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교 4학년 6월, 남들 다 취업 준비하는 그 시점에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교회의 가스펠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박종호’라는 분이 있어요. 그 분한테 레슨을 받았는데, 그 분이 무조건 그 해에 서울대 성악과 시험을 보라는 거예요. 다시 대학 시험을 준비하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당시에는 체력장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준비를 해야 했어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다시 대학 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서울대 성악과에 들어갔어요. 제가 그 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서울대에 들어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채플로 인해 전공을 바꾸신 만큼 채플 무대에 서는 것에 자부심도 있는 한편, 부담감도 있으시겠어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기분 좋은 부담이에요. 한국에 있는 웬만한 큰 극장에서 노래를 해 봤지만 어느 무대보다 채플이 가장 좋아요. 채플 무대에 올라가면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는 당당함이 있어야 해요. 관객을 무서워하면 위축이 되고 무대 위에서 작아 보여요. 무대 위에 오르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이 카리스마를 갖추는 것이에요. 그런데 채플에서는 그렇게 힘을 주고 있지 않아도 돼요. 앉아 있는 학생들이 관객이라기보다는 제 동생 같고 친구 같아요. 물론 다른 큰 무대에서는 호응이 크니까 좋은 부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채플은 시작할 때는 학생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도 끝날 때는 큰 박수 소리가 나오니까 공연 전과 후의 달라지는 반응 때문에 뿌듯하더라고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채플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은 채플 시간에 자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문화 채플에서는 자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고, 어떤 학생은 채플 시간에 제 노래를 듣고 페이스북에 찾아와서 글을 올리기도 하더라고요. 학교 채플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도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느껴 기분이 좋습니다.


  성악을 시작하고 기대와는 달리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처음에 서울대에 들어가서 맡은 파트는 바리톤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교수님들도 제 선택에 별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졸업을 마친 2월, 오페라를 하다가 목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때가 스물아홉 살이었죠.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데 제가 듣기에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때 직감을 했어요. ‘아, 목에 문제가 생겼구나.’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동안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병원을 찾아다녀도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차츰 회복을 하면서 그 해 5월 말 피아니스트였던 아내랑 결혼을 했어요. 피아니스트와 결혼하는 것은 늘 꿈꿔왔던 일이었죠. 그리고 6월,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어요. 이탈리아에 가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목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던 7년은 저에게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어요. 망치로 목을 내리치는 고통이 계속됐고, 저는 내내 울기만 했어요.

  아내는 이탈리아에 간 지 3년째 되는 해에 해야 할 공부가 다 끝났고, 5년째 되는 해에는 일자리가 생겨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저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지내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노래를 포기하게 됐죠. 동생과 장사를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 차가 자꾸 고장나고 체류 허가에도 문제가 생기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이런저런 일들이 한꺼번에 꼬여 버리니까 이탈리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었어요. 그래서 마음을 먹고 한국으로 들어가 동생과 사업을 시작했어요. 사무실을 차려 놓긴 했는데 저는 전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동생한테 잔소리만 들었죠. 어느 날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제가 음악을 시작할 때 음악 목회를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노래를 못하게 됐습니다. 나를 이렇게 만들려고 이 길을 걷게 하셨나요. 정말 한 번만 더 나에게 목소리를 주신다면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네가 배운 대로 노래하지 말고, 내가 너를 지은 그대로 노래해라."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일까 생각해 봤어요.

  원래 성악에서는 머리로 노래를 하라고 배워요. 두성이라고 하죠.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노래하라고 주신 것은 성대인 거예요.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대로, 성대로 노래를 하자.’라고 결심을 했어요.


  고통을 견뎌내고 다시 노래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때 아이가 5살이었는데 장난감 녹음기를 가지고 놀고 있더라고요. 아이가 부르는 찬양을 따라서 녹음을 해 봤어요. 녹음한 제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좋은 거예요. 이때 용기를 가지고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파트를 베이스로 바꿨죠. 아내가 저를 매일 코치해 줬어요. 원래는 10분만 노래를 해도 목이 아팠는데, 매일 한 시간 반을 연습해도 아프지가 않은 거예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죠. 이 6개월 동안은 소득이 전혀 없었어요.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하고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 10평짜리 전셋집을 얻었어요. 피아노도 못 놓을 공간이었죠. 그리고 6개월이 지난 2003년 말, 고양시립합창단이 창단하면서 단원 오디션을 봤어요. 첫 시험에서는 제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는데 떨어졌어요. 두 달 뒤에 2차 오디션을 봤는데, 2명을 뽑는 자리에 200명이 왔더라고요. 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포기한 상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합격이 된 거예요. 제 노래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죠.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면서 돈을 모아 집을 샀어요. 피아노를 놓을 수 있는 곳으로요. 그리고 이후 4년 동안 활동이 나날이 발전했어요. 국립 오페라단과 서울시 오페라단의 오디션을 봤는데 두 개 다 합격이 됐죠. 그런데 오페라단에서의 활동과 합창단 활동을 병행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합창단을 관두고 서울시 오페라단에서 5년 반 동안 활동을 했어요. 웬만한 베이스 주역은 다 맡았어요. 배경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가 밀어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제 실력으로 발전했죠.

  가끔씩 ‘만일 내가 대학교 때 일찌감치 베이스인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차근차근 배웠다면 지금 훨씬 잘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이 길을 찾았다면 저는 굉장히 교만했을 것 같아요.


  집안의 반대나 경제적 문제 때문에 자신의 꿈과는 다른 전공을 하고 있거나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고 있지 못하는 학우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꿈이 있으면 분명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꿈이 있으면 그려야죠. 제가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봤어요. 보면서 마음속으로 ‘내가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설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그렇게 됐잖아요.

  저는 꿈이 있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이제까지 정말로 꿈에 대한 확신이 있던 사람은 물질적인 부분이 부족하거나 집안의 반대, 혹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냈어요. 여러분도 조금 돌아갈지라도 반드시 하고 싶은 그 꿈을 찾아서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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