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골방 속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몰두했다.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홀로걷기를 10년. 게임학회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현재 게임산업 중심에 서있으며, 스토리텔링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항상 자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던 이재홍(전자공학·78)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사는 전자공학, 석사는 국어국문학, 박사는 문화학.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세 전공을 수료하셨어요.

   고등학교 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 문예반을 하면서 교지도 만들고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백일장도 많이 나갔어요. 나중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공대에 진학하길 원하셨고 결국 숭실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어요.

   공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이 났어요. 교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문득 국문학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숭실대 국어국문학 대학원을 마치고, 해외로 눈을 돌려 일본에 동경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약 10년 간 종합문화학 석·박사를 취득하며 문화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최근에 들어서야 문화 관련 학문이 많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잖아요. 일본에선 제가 공부하던 1980년도 후반 때부터 일찍이 문화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았어요. 당시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요즘 흔히들 말하는 ‘문화콘텐츠’를 접하게 됐고, 국내에 들어와 게임 쪽으로 눈을 돌려 ‘게임 스토리텔링’으로 숭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인문학과 공학을 넘나들며 굉장히 수평적인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과정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는데 그 이유와 성과가 궁금합니다.

   일본에 가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문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는 거예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문화라 하면 사회현상을 포괄하는 카테고리로 생각했어요. 반면 일본에서는 상당히 세분화돼 다뤄지고 있었었고, 그 속에서 지금 소위 말하는 문화콘텐츠를 접하게 됐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사람들이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데, 지하철 한편에 날짜 지난 만화 주간지나 월간지가 놓여있었어요. 유학 초기에는 돈이 없어서 그렇게 놓여있는 걸로 만화를 접했거든요. 기간이 지난 잡지를 누가 안 놔두고 가나 살피기도 했어요. 그렇게 만화를 접하며 스토리에 대해 구상을 했고, 나중에는 ‘내가 한국에 돌아가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어요.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의 스토리 창작 방법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한국영상대학교’에 ‘영상문예창작과’를 신설해서 교수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인식이 실기적인 부문에만 몰두하지 스토리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은 미미하잖아요. 그 때문인지 학과가 오래 가지 못했어요.

   그 후 세계관이 뚜렷한 게임이야말로 진정한 스토리텔링이란 생각이 들어, 게임 분야로 눈을 돌렸어요. 저는 순수예술과 대중성을 결합해 문화 사업을 키워볼 욕심이었어요.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여태껏 걸어온 길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게임과 관련된 고등 교육기관이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서울에 위치한 게임 학원에 ‘게임 시나리오 학과’를 창설해서 들어갔죠. 이후 그곳에서 온라인 게임을 비롯해 패키지 게임, 콘솔 게임 등을 섭렵해 나가며 게임 스토리를 분석하고 정리해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학원이 문을 닫게 됐고, 게임 관련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서강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10여 년간 서강대 교수로 있었어요. 그간 서강대에 게임과 관련된 교육 커리큘럼을 정립했고, 현재 약 5백여 명의 정도의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어요.

   이처럼 앞으로 스토리에 관한 인식이 변화되고 개선된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사람이나 ‘지브리 스튜디오’ 같은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따라가기에 실력이 부족하지 않거든요.

   학생들에게 어떤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싶으신가요?

   우리네 삶은 스토리텔링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선물을 준비해 상대에게 주기까지 모든 과정들이 스토리텔링이에요. ‘상대방을 어떻게 기쁘게 만들까’ 구상을 하며 사물에 감정을 싣는데, 이런 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이 녹아 들어가는 거죠. 이렇게 기존 상품에 스토리를 입혀 사람의 정서를 감동으로 바꿔 새로운 상품을 탄생시키는 것,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해요.

   게임 산업을 살펴보면 동양 사람들은 스토리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동양 게임의 스토리는 굉장히 빈약해요. 반면에 서양 사람들은 스토리를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스토리나 세계관이 깊고 풍부하죠. 그래서 외국 게임은 스토리만 즐겨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에게 통하고,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스토리 중심의 게임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에서 스토
리텔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어요.

    교수직뿐만 아니라 게임학회의 회장직을 맡고 계신데요. 게임학회가 어떤 학회인지, 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게임학회는 연구자나 교수님들이 모여 게임을 연구하고 발표하는 학회입니다. 초기에는 게임을 프로그래밍과 같은 공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했지만, 점점 미술과 음향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어요. 다각적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추세인 거죠.

   요즘 게임에 대한 정부 규제 때문에 게임학회가 집중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정부의 게임중독법은 게임 산업을 키우는 규제가 아니고 산업을 죽이는 규제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는 게임으로 인해 폭력성이나 사행성이 드러난다고 하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게임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 생각해요.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흔히 술과 담배가 그렇잖아요. 심지어 운동도 그래요. 운동 중독인 사람들은 전혀 안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안 좋은 경우도 생기는데 그래도 운동이 나쁘다고 하진 않잖아요.

   컴퓨터가 없던 시절 우리 선대들은 여가시간에 나가서 제기차기도 하고 그네타기 같은 놀이를 즐겼어요. 그러나 지금은 문명의 발전 속에서 그 놀이가 컴퓨터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게임에 대한 본질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게임업체와 정부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정기적인 ‘게임 포럼’을 통해 게임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사회적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
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게임업체 측에서도 우리 인류의 진정한 놀이 콘텐츠를 만들어 간다는 사명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게임이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게임 산업이 진화해 가는 길목 사이에서 게임업체들은 부단한 노력과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게임과 함께 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으신 어려움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소설을 많이 읽고 시인이 되기 위해선 시를 많이 읽어야 되듯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분야를 잘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게임을 해오면서 힘든 일이 많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여태껏 걸어왔던 길을 게임을 위해 모두 내려놨다는 거예요. 한때 주변에선 “외국 나가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붙잡고 있다.”는 수군거림이 많았어요. 집에서만 해도 아내가 밤새 게임하는 것을 보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죠.

   하지만 그때 전 게임을 하면서 게임 내의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연구했어요. 뿐만 아니라 게임이 미래의 핵심 문화 콘텐츠라는 확신이 들어 더욱 파고들었죠. 그런 과정을 지나 논문을 쓰고 책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저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손가락질이 아닌 게임계의 스토리텔링 일인자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게임업계로 진출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상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을 많이 발휘하세요. 스토리텔링의 출발 역시 창의력을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고 사회의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며,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저는 젊은 학생들의 머리를 스펀지라 생각해요. 뭐든지 들어가면 흡수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졌거든요. 학생들이 사회의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고 흡수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 좌우명은 ‘흐르는 물이 되자’예요. 흐르는 물이 되세요. 그리고 항상 자신을 흐르게 만들어 멈추지 않고 변화를 시키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 남들에게 인정받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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