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하다. 그냥 작은 동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합판을 이어 붙여 만든식당에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희한한 색깔의 음식을 먹는 현지인들과행인이 오고가는 길 옆에서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개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지그시 감은 어미개의 표정이이 도시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다. 현대적인 것이라고는 호텔이라는 간판을 내건 4층짜리 건물이 유일하다. 이 낮은 건물,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가장 높은 초고층의 마천루, 이건물에 붙은 작은 네온사인이 이곳의 밤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 된다.이런 상황을 접하면 늘 머릿속에서는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한국을 생각하면 이곳은 마치 고대사회처럼 보인다. 근대란 시간적인 순서로 봐야하나 아니면 상대적인 것으로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인가.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짜익티요(Kyaiktiyo)에 오기 위해 여섯 시간이나 버스를타야 했다. 한국 같으면 두 시간이면충분히 갈 거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피곤해진다. 기다리고 꾹참아야 한다. 버스 안은 미얀마어로읽는 불경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아랍권 국가를 여행할 때 듣던코란 소리나 이곳의 불경 소리는 나에게는 그저 비슷한 운율일 뿐이다.버스 기사에게 소리를 조금만 줄여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 불경 소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금세 스트레스가 된다.

   이 작은 마을에 이런 수고를 감수하고 오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산정상에 있는 파고다를 보기 위해서이다. 죽기 전에 이 산을 세 번 올라 파고다에 기도하면 큰 복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위까지 사람들을 태워 나르는 개조된트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타고 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트럭의 짐칸에 40명이 넘는 사람들을 빼곡히 정렬시키는 안내원. 짜익티요파고다에 가서 기도를 하려는 순례객들과 그들로부터 빠지지 않고 승차요금을 받으려는 안내원의 눈매가 묘한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마치 신성(神聖)과 세속이 눈싸움을 하는 것 같다.

   몹시 출렁거리며 해발 천백 미터나 되는 산을 20분 만에 주파한 트럭은 순례객들을 쏟아낸다. 사람들이향하는 곳으로 무작정 따라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모습의 황금색바위와 바위 위에 뾰족이 세워진 파고다가 보인다. 합장하며 불교식으로절하는 사람, 무언가를 읊조리며 묵념하는 사람, 파고다를 직접 만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 이 산위에 오르기위해 감수해야 했던 불편과 스트레스가 산 위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사라진다. 왜 사람들이 이 산 위에 오르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느낄수는 있었다. 이 시점에서 말과 글의의미도 없어진다.

   하산할 때는 다시 트럭을 탈 수도 있었지만 걸어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내려오는 도중에 만난 고산족들의 모습에서 참다운 행복을 발견했다. 언젠가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을 때가 되면 짜익티요 파고다에 오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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