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이창동은 본래 영화인이기 이전에 작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고 다녔던 그는, 신춘문예로 화려한 등단을 한다. 그러나 작가 이창동은 책상 언저리만 오가는 작가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재능에 대한 좌절을 한다. 탈출구처럼 선택한 것이 영화인으로의 삶이었고, 그 이후 그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절망이 더 많았던 작가로서의 삶을, 영화 <시>를 위해 다시금 상기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까지 들었던 의문은 영화를 보는 순간 해소된다. 영화 <시>는 문학과 예술, 어떤한 범주에 국한되는 영화가 아닌, 삶을 바라보는 이창동의 세계관, 그 자체를 포괄하고 있다. 주인공 미자(윤정희)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게 된 뒤 시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꽃, 이후에는 새의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시로 옮기려고 한다. 동시에 함께 사는 손자가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지며, 미자는 사건 가해자의 신분이 된다. 그러나 미자는 모든 것을 회피하려고 든다. 손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만, 여전히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 가해자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마저 시상을 떠올리고, 가장 먼저 자리를 빠져 나온다.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소녀같은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미자에게 알츠하이머는 필연과도 같다. 삶의 고통에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그녀에게 알츠하이머는 충분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자가 완성한 시는, 꽃과 새소리부터 오는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소녀의 절망을 생각하며 시를 완성한다. 인간사와 동떨어진 아름다움을 올려다 보며 시를 쓰려고 했던 그녀는 결국 절망을 내려다 보며 시를 완성한다.

  이창동이 담아낸 <시>, 그리고 삶이란 마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누추할 수도 있고, 추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이 아름답지 않기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원하고, 아름다움을 찾는다. 결국 영화 <시>는 눈물날 만큼 사실적인 역설이자,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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