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열한 번째 작품 <빈집>은 색다른 형식의 치유를 표현해 낸다. 김기덕 감독 스스로도 영화 <빈집>을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빈집>은 김기덕 영화 특유의 폭력성보다 메시지와 의미에 집중된 영화이다. 영화 <빈집>은 크게 결핍과 단절, 그리고 치유를 다룬다. 특히 영화 중반부까지 ‘집’은 개인에게 안락함을 주는 공간이 아닌 결핍과 외로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재로 쓰인다. 반면 주인공 태석과 선화가 유랑하며 들르게 되는 ‘빈 집’은 온전히 자신들의 공간이 아님에도 그들의 외로움과 상처를 보듬어 주는 장소로 드러난다. 고학력에 제법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태석에게 결핍이란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외로움을 뜻한다. 일방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사는 선화 역시, 물질적인 부족함이 없음에도 유령과 같은 삶을 사는 인물로 표현된다. 그들의 상처는 대화의 단절로 드러나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단 두 마디의 대사를 제외하고, 표정과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연기해낸다. 동시에 영화 <빈집>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태석의 ‘유령연습’에 있다. 영화 속 태석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걸쳐 있는 인물임과 동시에 선화의 판타지 속 남자이기도 하다. 선화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맴돌던 태석이 선화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선화 또한 태석의 상처를 감싸주며 그들만의 동화가 시작된다. 태석이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서도 두 사람의 동화는 계속된다. 태석이 타인으로부터 완벽하게 숨기 위한 유령연습을 하는 동안, 선화는 남편의 폭력을 처음으로 맞받아친다. 감독은 그들의 모습을 교차편집하며 그들이 함께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소한 태석이 완전한 유령으로 변태하여 선화의 집을 찾아오는 결말부 역시 그렇기에 초월적으로 느껴진다. 선화, 그의 남편, 그리고 유령이 된 태석의 동거는 현실보단 환상에 가깝다. 다만 비로소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게 되는 선화의 모습을 통해 <빈집>만의 방식으로 치유가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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