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월), 오후 6시 30분에 본교 김덕윤예배실에서 기독교학과 주최로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강연회가 열렸다. 국내 최초의 대중 팝아티스트 낸시랭, 파격적인 모습으로 연일 화제가 되는 그녀가 이야기
하는 팝아트와 그녀의 삶에 대해 들어보자.

 

  우리에게 아직 멀게 느껴지는 ‘팝아트’

  여러분은 ‘예술’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고독하면서도 고뇌하고, 그리고 또 이해하기 힘든 무엇인가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하지만 팝아트는 달라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고, 또 한편으로는 상업적인 예술이에요. 그래서 팝아트의 정확한 명칭은 ‘Popular Art’, 즉 대중 예술이에요. 팝아트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이 있어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제가 있어요. 저는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고 불려요.

  왜 걸어 다니는 팝아트냐고요? 혹시 ‘퍼포먼스’라고 들어보셨나요?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것을 퍼포먼스라고 해요. 저는 제 스스로 작품이 되는 여러 퍼포먼스를 펼쳤어요. 이런퍼포먼스를 통해 저는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는 이름을 얻게 됐죠. 예를 들어 지난 2010년에 런던에서 ‘개인이 국가다’ 라는 주제로 거지 여왕 퍼포먼스를 했어요. 이 퍼포먼스는 제가 ‘낸시랭 나라’의 여왕이 돼서 건국을 위해 시민들에게 모금 활동을 하며 런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에요. 그리고 2012년에는 비키니 차림으로 ‘앙’ 피켓을 들고 여의도부터 광화문까지 돌아다니면서 투표 독려 퍼포먼스도 했어요. 그때는 4월 11일로 국회의원 선거 이틀 전이었는데, 제가 정치에 관심이 많아져서 국민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 이었어요.

  팝아트에는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패러디’라는 장르도 있어요. 패러디는 작가가 주제의식을 가지고 유명작품이나 문구 등을 바꾸거나 합치는 것을 말해요. 저도 패러디를 많이 했는데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최근 작품은 ‘최후의 만찬’이에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패러디했어요. 이 패러디에서 저는 원래 그림에 있는 열 두 제자와 예수님의 얼굴을 다 바꿨어요. 가운데에 앉아있는 예수님에는 제 얼굴을 넣었고 제 주위의 나머지 열 두 제자의 얼굴은 고 노무현 대통령부터 부시 대통령, 후진타오 주석 등 각국 나라의 정상들로 채웠어요. 그 정상들은 각자 서로를 껴안고, 키스를 하고 정답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저는 ‘너희들 싸우지 말고 사랑하고 행복해라.’라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아직까지 팝아트는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이에요. 작가 자체가 작품으로써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대중들에게 보이는 사례는 국내에선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사실 많은 분들이 저를 보며 불편해하시고 비판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예술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요. 다양한 작품이 있는 것이고, 이 모두를 존중해야 해요. 다양성을 즐기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대표작 ‘터부 요기니’를 소개합니다

  팝아트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얘기했는데요. 이제는 제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터부 요기니’를 소개하고 싶어요. 터부는 ‘금기’를 뜻하고 ‘요기니’는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혼합된 존재를 의미해요. 모습은 로봇 몸체에 사람들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심장같은 장기들이 날개가 되거나 다리 부분에 합쳐져 있어요.

  터부 요기니는 자신을 보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힘을 다해 그들의 원하는 것을 이뤄준 다음 죽어요. 그러나 다시 부활해 영원히 존재하며 관객 들의 꿈을 이뤄줘요. 제가 많든 수많은 터부 요기니는 이렇게 계속 존재하며 꿈을 이뤄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피어난 예술가의 꽃

  사실 저는 굉장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큰 사업을 하셨거든요. 어렸던 시절에 저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면서 매일같이 쇼핑 다니고, 또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전혀 부족함 없이 살았어요. 이렇게 남부럽지 않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할 때, 저는 제가 예술을 좋아하고 또 재능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홍익대학교 서양학과로 진학했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집은 부유했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이렇게 풍요롭게 살면서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고, 또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라고 평범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그렸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갑자기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결국 실패하면서 저희 집이 망해 버렸어요.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도 입원했고요. 저는 엄청 당혹스러웠어요. 돈을 벌 줄은 모르고 매일 놀러 다니고 그림만 그리던 대학생이 갑자기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가 돼 버렸으니까요.제 장밋빛 미래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죠. 졸업은 가까워지는데 정말 막막했어요. 저는
예술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이 망하다 보니까 돈이 전혀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순수한 예술가로서의 길을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우니까요. 예술은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작업실을 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작품에 필요한 재료비를 감당하는 것은 벅찬 일이었어요.

  또 작품을 만들어서 전시회를 열어도, 전시회 장소를 빌리는 데 드는 돈과 작품을 설치하고 행사를 진행하는데 쓰이는 인건비도 부담이에요. 게다가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작품이 팔리나요? 작가가 유명해야 작품이 팔리는데, 언제 유명해질지도 불확실하죠. 그래서 4학년 겨울에 고민을 했어요. “미술 강사를 하다가 원장을 할까?”, “열심히 교수님 밑에서 조교 활동을 하다가 학교 강사나 교수가 될까?”,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내 꿈을 믿고 계속 아티스트 활동을 할까?”, “아니면 회사를 들어가서 남는 시간에 작품 활동을 할까?”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저한테 “낸시야. 얼른 취직해서 돈
벌고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어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지 몰랐거든요. 아무튼 어머니의 말을 듣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홍대 미대는 대한민국 최고 미대라는 간판이 있기 때문에 졸업하고 그래픽 부분만 조금 배우면 대기업에 취직을 쉽게 할 수 있어서 취직에 대해선 별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근데 전 욕심이 무척 많아서 회사를 들어가면 최소 CEO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언제 CEO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요. 한 50대에서 60대 사이에 임원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 내가 벌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봤어요. 삼성에서 받을 돈을 모두 합쳐 보니 과거 우리집에 있었던 재산보다 훨씬 적었어요. 이런 계산이 나오자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다면 저는 굉장히 불행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내 재능을 믿고 하고 싶은 예술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야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이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제가 중학교 때부터 가진 하나님에 대한 신앙 덕분이기도 해요. 저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하나를 굉장히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고 아주 커다랗고 멋진 재능이라는 선물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예술을 계속 하기로 하며 ‘내게 닥친이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재능을 더 돋보이게 해 줄 거야.’라고 믿었어요.

  간절히 원하고 준비하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니

  정말 진심으로 원하고 기도하세요. 여러분이 진짜 원하면 기회가 반드시 와요.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항상 루이뷔통과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루이뷔통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루이뷔통 가방을 항상 들고 다니고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도 그 가방과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예술가라고 하는사람이 명품 좋아한다고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저는 명품을 사랑했으니까요.그렇게 사랑하면서 항상 루이뷔통과 일하고 싶다고 원하고 기도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루이뷔통 아시아 대표가 한국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한국에 오다가 비행기에서 제 인터뷰가 실린 잡 지를 본 거예요. 그 분은 제가 나온 페이지를 찢어서 보관했다고 해요. 왜냐고요? 루이뷔통의 가장 최신 상품인 스키니 백을 들고 찍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사진이 대표님에게 좋은 느낌을 줬나 봐요. 그 분은한국에 도착해서 루이뷔통 한국 대표를 통해 저를 찾았어요. 그리고 한국대표님은 저에게 “자신을 보여줄 만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와 보세요.”라고 말했어요.

  보세요. 정말 간절히 원하니까 기회가 오죠? 그런데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기 때문에 미리 포트폴리오를 다 만들어 놨어요. 지금은 포트폴리오를 컴퓨터로 만들지만 그때는 큰 종이 위에 손수 글씨도 만들고 사진을 인화해서 붙였어요. 저는 이렇게 미리 만든 포트폴리오를 보여줬어요. 아시아 대표님을 만나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다 보여줬어요.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어차피 더 이상 안 볼 사람이잖아요? 그때 많은 얘기를 했지만 그 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작품을 루이뷔통 상품에 넣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당돌했어요. 대표님과의 면담을 끝내고,몇 차례의 추가 테스트를 거친 후 결국 저는 루이뷔통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됐어요. 보세요. 이렇게 현실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도 항상 간절히 원하고 또 진심으로 믿고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두세요.

  진정한 당신의 삶을 살아라

  우리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세요. 솔직히 한국 사회에선 자신의 삶을 살기 힘들어요. 친구나 부모님이 말하고 원하는 삶, 아니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주위에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이 많잖아요.

  우리는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처럼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아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제가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살았다면 제가 이룬 것들은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에요. 남의 시선이 두렵고 그들에게 비판받을까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고있는 거예요. 항상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사세요. 세상의 기준에는 맞출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당신의 삶이 세상의 기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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