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도시의 구 시가를 장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눈은 즐겁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에 가면 ‘도시의 모더니티’가 제공하는 환상에 빠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과 최첨단의 마천루가 도시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매일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에너지 넘치는 표정과 그들이 서로에게 외쳐대는 강한 목소리만으로도 도시는 충분히아름다울 수 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메우고 있는 ‘오토바이 반,사람 반’을 경험한다. 작은 오토바이위에 한 가족으로 보이는 네 명이 타고 있다.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어머니가 맨 뒤에 앉아 사이에 낀 아이 둘을 보호하고 있다. 당연히 헬멧은 쓰지 않았고 그 어떤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았다. 위태로운 운전 속에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가족의 모습이 하노이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 아이들까지 타고 있는데 왜 저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백미러가 없는 오토바이가 많이 보여 그 이유를 묻자 전쟁이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라는 의미라고 설명해 주는 현지인 친구의 말에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느낀다. 베트남 전쟁은한국전쟁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동족끼리 이데올로기 때문에 분열되었고 외세가 개입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지금까지도 심각한 ‘전쟁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전쟁 후에 모든 것을 빨리 하려고 하는 것은 전쟁이 각인시킨 트라우마 때문은 아닐까. 내머릿속은 도시의 풍경이 아닌 전쟁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하노이의 아름다움은 곧 여행의 목적에 충실하게 나를 돌려 세운다.

  도시의 한복판을 지키는 호안 키엠(Hoan Kiem) 호수는 낭만적이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외국 공관과 재래식 시장이 호수를 끼고 있다. 이 호수는 외국의 문화와 태생적인 자국 문화의 공존(共存)을 만들어 내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하노이에 있는 청춘 남녀가 모두 집결한 것 같이 쌍쌍이 호수 주변을 거니는 모습이 이채롭다.젊은 커플의 뒷모습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의 미래와 같이 여겨진다. 길거리 화가와 젊은 남녀의 결혼식 사진 찍는 모습에서 전쟁의 기억은 이미 사라진 듯하다.

  삶의 에너지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하노이는 그 정답을 줄 수 있는 도시다. 겉으로는 배타적으로 보이지만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려는 모습, 괴롭힘의 상처가 있지만 용서할 수 있는 자의 여유, 너무 빨라서 안 보일 것 같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은은한 미소를 하노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의 직선적인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혼돈 속의 질서를 보여주는 도시 하노이를 내가 가 본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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