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동양 영화의 위상을 서구에 알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1951년 당시, 베니스영화제에서의 황금사자상 수상은 동양 영화에 대한 베일을 벗겨 냄과 동시에 당대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대상을 뛰어 넘는 독특한 소재와 카메라 워킹, 그 속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는 과거를 넘어 오늘날 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 <라쇼몽>의 파격은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된다. 비가 쏟아지는 마을에 폐허가 된 거대한 문 라쇼몽, 한자어로는 나생문(羅生門)- 삶과 죽음을 망라하는 문이라는 의미를 가진 나생문은 앞으로 펼쳐질 진실 없는 사건을 함축적으로 상징한다.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던 공간은 머지않아 해가 쨍쨍한 숲으로 바뀐다. 나생문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남자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뀐 공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도끼를 든 나무꾼이다. 도끼를 든 나무꾼의 모습은 트래킹 쇼트로 전해진다. 나무꾼과 거리를 두고 나무꾼을 쫓아가는 트래킹 기법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숲에 대한 긴장감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함을 높여준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남자의 아내, 죽은 남자에 빙의된 무당, 그리고 도적이 사건을 진술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이 모든 상황을 플래시백 기법으로 보여주며 한 가지 사건에 대한 개개인의 시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 어느 누구의 진술도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 후에 등장하는 나무꾼의 진술과 사람들의 진술이 전혀 다르다는 것에 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고 끝난다. 영화 <라쇼몽>은 하나의 진실을 두고,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세 인물을 통해 체면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없는 죄마저 자신의 죄로 인정해 버리는 당대 일본의 가치관 역시 엿볼 수 있다. 진실에 대한 통찰과 사유, 이것이 바로 영화 <라쇼몽>을 이끌어 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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