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외할아버지와 갔던 인천 송도해수욕장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각종 위락시설로 더 유명하지만 송도해수욕장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깨끗한 바다였고 낭만이었다. 다섯 살박이 나에게는 인천처럼 좋은 곳은 없었다. 매년 여름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갈망은 지금의 맥락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자서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듯이 인천을 빼놓고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할 수는 없다. 서울에서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면 40분 만에 도착하는 어린 시절의 신천지를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인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아닐까 싶다. 전후세대인 나도 전쟁의 생생한 이미지는 영화를 통해서만 본지라 그 참상을 피부로 느낄 수는 없지만, 이 위대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암울한 상상이 머리를 맴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자유공원의 동상이 되어 항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서 현재의 인천을 방문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깊게 주름진 노병(老兵)의 얼굴은 생각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의 시작점이 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스토리텔링으로 되살아날 뿐이다.”

  사실 오랜만에 인천으로 나의 발걸음을 옮기게 해준 것은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은 도시를 이야기하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는데,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집의 면발과 짜장 소스의 맛은 이 사자성어의 본의(本意)를 느끼게 해준다. 짜장면을 왜 30분이나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말끔히 해소시킨다. 한국안의 또 다른 중국이 바로 이 곳 인천에 있다. 그러나 이 도시에 내재한 신문물을 받아들인 개항장으로서의 근대성, 이질적인 다른 문화와의 혼종성(hybridity), 강력한 외세 앞에서의 굴욕, 전쟁의 비극, 그리고 전쟁영웅의 위대한 선택은 인천을 제대로 이해하는 진정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인천을 제물포라고 말씀하셨다. 인천보다는 더 ‘있어 보이는’ 이 이름은 어린 시절의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제물포로서의 인천은 요즈음 매일 신기록을 경신중인 <명량>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이 영화로 이순신 장군의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듯이 제물포라는 이름으로 인천을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수 있어 할 이야기가 참 많은 인천이 좋다.

  곧 45억 아시아 사람들의 축제가 인천에서 개막된다. 인천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아시아 친구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다. 이제 막 열린 가을의 시작에서 맛난 음식도 맛볼 겸 선수들의 경기도 볼 겸, 특히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지점으로서의 인천도 공부할 겸이 도시를 다시 가보려고 한다. 서울에서 가까워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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