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로 여행을 가는 목적은 오직 딱 하나뿐이었다. 5년간의 집권 기간 중 무려 3백만 명을 학살한 폴 포트(Pol Pot)의 만행이 서린 킬링필드를 보러간 것도 아니고 맛있기로 소문이 난 캄보디아 맥주를 맛보러 간 것도 아니었다. 신들의 거처인 앙코르 왓외에 생각나는 콘텐츠는 없었다. 앙코르 왓이 캄보디아고 캄보디아가 곧 앙코르 왓일 뿐이었다. 늘 머릿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힌두 신들의 사원을 보기위해 중독성이 있는 태국 여행마저 잠시 옆으로 미루어 놓고 웅대한 신전의 여운(餘韻)이 감도는 이 도시 씨엠립에 도착했다. 이미 책을 통해서 수없이 봐왔던 앙코르 왓이었지만 도시에 감도는 아우라(aura)는 맹인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막연함을 순식간에 박살내 버린다. 이것이 진품만이 풍길 수 있는 힘이었던가. 얕은 개울에 비친 이 위대한 사원의 그림자조차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리운다. 진품은 그림자조차 범상치 않게 만든다.

  천년고도를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툭툭’이라는 어설픈 교통수단으로 둘러본다는 현실과 이 교통수단에 오래 타고 있으면 허리가 아파온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하게 하지는 않지만,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는 오히려 몽환(夢幻)적인 자태를 자아낸다. 흩날리는 흙먼지를 피하려 입과 코를 손으로 막지만 눈은 잠시라도 감을 수 없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더 유명한 타프롬 사원안의 거대한 돌무더기들은 나의 안압(眼壓)을 불규칙적으로 팽창시킨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시각 정보가 들어오면 우리의 눈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 돌들은 과연 누구의 손으로 운반되고 조각되어진 것일까. 누군가 농담으로 이 사원은 엄청나게 진보한 과학기술을 소유한 외계인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바이욘 사원의 각기 다른 미소를 가진 얼굴상은 상투적인 농담이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진담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유럽 여행에서 로마를 제일 먼저 보면 나머지 유럽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듯이 아시아 여행에서 앙코르 유적을 먼저 보면 나머지 아시아는 그저 식도락 여행 정도로 전락할 듯싶다. 미얀마의 짜익티요 파고다와 태국의 아유타야 사원들을 앙코르 유적보다 먼저 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씨엠립을 제일 먼저 방문했더라면 나의 아시아 여행은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과학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씨엠립을 권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도시에 있는 사원들이 일깨워 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사원에서 신성(神性)을 느낄 수 있다면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 또한 인간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음을 씨엠립은 스스로 말해주고 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