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자기 독백적 한시를 접하기 전까지는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만이 떠올라 인간적인 고뇌가 이렇게 클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젊은 날 호기롭게 꿈꾸었던 미래가 허상이 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갈등했으리라. 자연을 관찰하고 동식물에 자신과 세상을 빗대어 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세상을 원망하다 체념하고, 다시 다짐하는 모습들이 그를 더 친밀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했다. 그는 옛사람 중에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도 위대한 정신을 드러냈던 위인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한 “지금 내가 불행하고 불편한 것은 내 것인 줄 알고 쥐었다가 놓친 것 때문일 터. 원래 가진 것 없는 저들은 드넓은 천지를 제 집 삼아 구김살 없이 산다.”라는 구절에서 정약용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지금 가지고 있기에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권력의 중심에 있던 정약용이 하루아침에 몇몇 사람들의 모함으로 유배지에 가게 되어 얻은 깨달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상황은 잠깐 만에 문득 바뀌곤 하니까, 다만 그때 내 자세를 생각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너무도 당혹스러운 그런 절망에 빠졌을 때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이 교차한다. 특히 그런 감정들은 밤이 되면 불끈 불끈 솟아오르곤 하기에 그가 잠 못드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무작정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고요히 바라보고 시로 승화시켜 현명하게 극복했다. 잘못된 자리에서 자라는 뽕나무를 보고, “나는 네가 쓸모 있는 자질을 타고났으되 바른 자리를 가져 뿌리 내리지 못한 것을 슬퍼한다. 그럼에도 시련에 주저앉지 않는 굳센 의지와 타고난 쓰임새로 인해 본연의 성품을 간직하게 된 것을 기뻐한다.”라는 구절은 정약용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약용의 강직한 면모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좋은 구절은 여러 번 보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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