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선언만으로 타인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없고, 자신의 의무를 회피할 수도 없다. 우리네 삶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종종 자신이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일방적 선언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무식이 용감인 셈이다. 우리는 종종 음식점이나 찜질방 등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곳 입구에서 “신발을 분실할 경우 책임지지 않음”이라는 업주의 붉은 글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조금 비싼 신발이나 새로 산 신발을 신고 간 경우에 도둑맞을까봐 갑자기 염려가 생겨난다. 인간의 간사함이다.

  신발은, 아무리 거친 자갈밭이나 가시밭길이라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그런데도 흙이나 먼지 속에서 이용되는 생래적 한계 때문에 가장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휴대폰만큼이나 종종 그 중요성을 깨달으니, 그것은 바로 위와 같이 식당 등을 출입할 때이다.

  공중접객업자(식당주 등)는 고객으로부터 임치(보관)받은 물건(신발)의 멸실 또는 훼손이 있는 경우 보관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언제든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상법 제152조에 규정되어 있다(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업주가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고객이 맡겨두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관리하는 시설(식당) 내에서 신발이 분실된 경우 역시 배상책임을 진다. 더나아가 앞서의 예처럼 “책임 없음”이라고 써 붙여도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분실한 신발을 신고 왔다는 것과 분실된 신발의 가격이 얼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업주가 손해배상을 순순히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재판을 할 수밖에 없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까 봐 소송을 포기하기 십상이지만, 업주의 일방적 선언(책임면제의 안내문 부착)에 지레 주눅들거나 쫄지 말고 당당하고 집요하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한 번 분실해 보고,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떽쥐베리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하고 싶으면 목재나 일감을 나눠주는 것보다는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라고 했다. 업주에게도 배상 안 해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질려서 배상해 줄지도 모르니 어디 한 번 실천해 보시길. 단, 그 뒤 사태에 대한 책임은 각자 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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