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작가 김영준(문예창작·06)

사진 조성찬 수습기자 ron@ssu.ac.kr
  어린 아이들은 스케치북에 자신의 감정을 담고, <러브 액츄얼리>의 아름다운 연인들은 스케치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예술가들은 일생일대의 대작을 스케치북에 남겼지만, 김영준 작가의 스케치북은 아직 진행형이다. 작가의 이름으로 그는 스케치북에 어떤 그림들을 남겼을까? <컴백쇼 톱10>부터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김영준 동문(문예창작·06)의 작가로서의 삶이 담긴 스케치북을 지금부터 감상해보자.

 

  대학시절부터 방송작가가 되고 싶으셨어요?

  원래 선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아프리카에 가서 애들 밥 먹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신학대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목사님과 제 주변 분들이 “외길로 가면 신학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라고 하셔서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수능에서 수리영역 점수가 잘 나온 거예요. 그래서 문과였던 제가 교차 지원을 해서 화학공학과에 진학했어요. 막상 다니다 보니 수학을 좋아했던 저도 대학 수학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그래서 과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적당한 학과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언론홍보학과랑 영어영문학과, 문예창작학과가 리스트에 있었는데, 언론홍보학과는 기준이 너무 높았어요. 그래서 문예창작학과에 찾아가서 뭐하는 학과냐고 물었죠. 글 쓰는 학과라고 하더라고요. 저랑 정말 안 맞았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읽은 책도 몇 권 안 됐거든요. 그때 ‘내가 텍스트에 약하니까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만큼은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보자.’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그릇을 만들어 놔야 뭐라도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죠. 문예창작학과에 가보니까 문학과 예술이라는 장르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열심히 썼어요. 동시에 영어영문학과도 복수전공을 했죠. 공부는 좋은 것 같아요. 시험만 없다면 말이죠.

  취업을 할 때가 되니까 제가 예능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교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고, 마음 맞는 친구들 한두 명과 모여서 구성한 컨텐츠가 몇 천 명한테 호응을 얻는 것이 좋았어요. 길거리 공연을 하다 보니 대중을 접하는 것에 대한 센스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방송 쪽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선교사의 꿈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다만 미디어를 통해서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미디어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방송작가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어요?

  방송작가는 주로 인맥을 통해요. 친구나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해서 들어오게 되는데, 소개 받아 들어온 사람이 확실히 보증되기 때문이죠. 인맥이 없으면 대부분 아카데미라는 곳을 통해서 들어오죠.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 메인 작가들이에요. 본인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막내 작가를 구한다는 공지가 뜨면 괜찮은 수강생을 데려다가 쓰는 거죠.

  ‘KBS구성작가협회’라는 사이트에 구인구직이 올라오는데, 지상파는 구인이 거의 없어요. 지상파에서는 일을 잘해야 한다는 보증이 돼야 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소개받는 사람으로 채워져요. 구인구직 올라오는 걸 계속 보다가 이력서를 몇 개 넣었는데 그 중에 한 군데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작가를 하고 있던 친구가 연결해준다면서 같이 만났던 선배가 그 프로그램을 하고 있던 거예요. 그 선배가 면접을 보라고 해서 면접을 보게 됐고, 그렇게 2011년에 <컴백쇼 톱1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 선배가 다른 프로그램에도 계속 소개를 해주고, 소문도 나고 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죠. 스케치북에는 <맘마미아>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하던 PD가 저를 데리고 왔어요. <맘마미아>가 종영되고, 저는 해외 여행을 하던 중에 “스케치북 해볼래?” 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에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기로 90% 정도 결정이 돼 있는 상황이었는데 취소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왔죠.


  방송국 일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실감하세요?

  힘들긴 하지만 이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어요. 중간고사 기간에 힘들죠? 그 정도로 힘들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시험 보는 것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빨리 사회로 나가야 시험을 안 보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회 나와 보니까 매일 매일이 시험이에요.

  ‘힘들다’라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른 것이니까 저는 괜찮아요. <맘마미아>라는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폐지가 됐어요. 제가 영자 누나 담당이었는데 폐지가 결정된 날 영자 누나랑 고기를 먹고 있었어요. 저는 고기를 먹으면서 “누나, 저 너무 힘들어요. 몇 년 안 했지만 여기는 전쟁터 같고 제 영혼이 갉아먹히는 기분이에요.”라고 말을 했죠. 그랬더니 영자 누나가 저를 때리면서 “야, 경비 아저씨도 힘들고 아르바이트생도 힘들어.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안 힘드냐. 우리가 남들보다 더 힘들다는 인식은 있지만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말을 해주더라고요.


  보통 방송작가는 여자가 많던데, 남자 작가가 여자 작가와 다른 점이 있나요?

  일단 장점을 꼽자면 첫 번째는 생물학적인 거예요. ‘이 틈에 남자 작가가 있다.’라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의 분위기나 환경에 큰 영향을 주죠. 그리고 버라이어티 같은 야외 구성물일 경우에는 체력도 무시 못 해요. 여자 작가들은 많이 쓰러지기도 하는데 남자 작가들은 적어도 그런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요즘은 여자 PD도 많아서 메인 PD와 메인 작가가 둘 다 여자고, 아랫사람들도 다 여자일 경우에는 남자 작가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내걸어요. <고쇼>도 그랬고, <맘마미아>도 그랬어요. 그렇게 되면 경쟁률이 확 떨어지죠. <진짜 사나이> 같은 경우에는 남자 작가가 꽤 있거든요. 그런 경우죠. 반대로 여성성이 넘치는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남자 작가가 들어가기 쉽지 않아요.

  단점의 사례를 들자면, 제가 <정글의 법칙>을 가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거기는 메인 작가랑 막내 작가랑 같이 정글에 가는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메인 작가가 여자였어요. 그 작가가 “내가 어떻게 남자애랑 가냐. 마음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불편하고, 붙어 다니지도 못하는데.”라고 이야기해서 결국 못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생각하는 남자 작가의 최대 단점은 여자의 심리나 예민함 같은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것도 생물학적인 것이죠.


  방송 작가는 월급이 적다던데 정말인가요?

  연차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보통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월급의 반 정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10년에서 15년차 정도의 메인 작가가 되는 순간 회당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 받아요. 그러면서 프로그램을 적게는 세 개에서 많게는 여섯 개까지 더 하죠.

  작가를 시작했을 때는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생계형 작가가 있고 레저형 작가가 있어요. 생계형 작가는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일하고 프로그램 하나가 끝나면 쉴 새도 없이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서 계속 일만 하고 살아요. 연차가 어릴 때는 여러 프로그램을 같이 할 수가 없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 친구가 중학교 교사가 돼서 강연 한 번만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200명밖에 안 되는데 거기에서 두 시간 정도를 해줬어요. 그런데 그게 소문이 난 거예요. 그래서 지금 와 달라는 데가 너무 많아요. 시간이 되면 다 가고 싶지만 시간이 안 돼서 다 못 가죠. 돈이 목적은 아니었는데 가면 돈을 주더라고요. 지금 밴드도 하고 있는데 가끔 고아원 가서 연주회도 열고 그래요.


  밴드를 하고 계신다면 지금 하고 계신 일이랑 연관이 있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스케치북>에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스케치북>은 제작비가 얼마 없어서 월급이 되게 적어요. 작년에 <맘마미아> 할 때에 비해 반을 깎고 들어왔어요. 선배들이 다 저더러 미친 거 아니냐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하기로 했어요. 애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주의였으니까 프로그램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죠. 저처럼 돈 깎고 들어오는 경우는 작가 다 찾아봐도 없을 거예요. 월급이 워낙 적기 때문에 어떻게든 올리길 원하죠. 하지만 저는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음악이 좋아요. 그리고 밴드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는 프로그램이 <스케치북>이에요. 이건 정말 완벽한 거죠. 저는 제가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요즘 방송작가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요.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평범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명한 프로그램 여러 개를 만든 모 작가가 있어요. 그 선배가 해준 말이 있어요. “방송국 사람들은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신병자들의 집단이다.” 그런데 그 말에 모두 공감을 해요. 저 또한 그렇고요. 사실 사람은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그것을 표출하느냐 안 하느냐로 나뉘거든요. 저는 그것을 표출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엇이든지 범죄 수준까지 닿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방송 일을 할 때 녹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스케치북> 면접에서 “전 밴드를 해요. 젬베와 드럼을 치고, 키보드 코드 정도는 다 칠 줄 알아요.”라고 했을 때, 그것이 플러스 요인이 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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