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정통전·96) 동문
 

어릴 때부터 방송사에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뜻에 따라 대학 졸업 후 KBS에 도전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대기업에 입사해 9년을 근무했지만 방송인의 뜻은 항상 가슴 속에 있었다. 결국 가슴 속의 외침을 무시하지 못하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KBS에 도전했다. 가정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기업이라는 안락한 직장을 포기하면서, 삼고초려 끝에 방송인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뤄낸 KBS 41기 신입사원 방송기술직 김영광(정통전·96) 동문. 김 동문의 치열한 삶을 들여다보자.

 

 방송기술직은 어떤 일인지 궁금해요

  방송기술직은 오디오 조절과 영상 편집 및 조명 관리 등 방송을 내보내는 데 있어 실무적인 역할을 하는 직종이에요. 저는 이 중에서 조명을 맡고 있어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방송은 야외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찍는 교양 프로그램인 <비타민>과 <추적 60분> 그리고 <우리말겨루기> 등이죠. 여기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영상이 매치되도록 스튜디오와 인물들에게 조명을 배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 방송에선 무수히 많은 빛들이 비춰지고 있어요. 보통 여자보다 남자 출연자에게 빛을 더 많이 쏴주는데, 화장을 많이 안 해서 그런지 남자들의 피부가 빛을 더 많이 먹더라고요.

  KBS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신입사원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서른 여덟의 나이로 합격했어요. 저와 같은 기수의 신입사원 중 가장 어린 동기와는 15살 차이가 나요.저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사원은 지금까지 없었어요. 재작년에 저랑 같은 나이였던 분이 들어오셨다고는 하는데,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일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방송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면 정규직과 계약직, 그리고 외주 직원들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만들기 때문이죠. 자신의 역할과 능력이 중요한 것이지 기수나 나이 가지고 크게 부딪힐 일은 없어요.

  일하다가 실수하신 적은 없어요?

  실수 정말 많이 해요. 조명은 조금만 실수해도 눈에 확 띄잖아요. 그래서 더욱 조심하려고 하는데도 매번 실수가 생겨요. 기억에 남는 실수는 <진품명품> 조명을 제가 잠깐 대타로 맡았었던 때에요. 전문가들이 매긴 가격 감정가를 공개할 때 조명을 절반정도 꺼줘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내야 해요. 근데 제가 감정가가 얼마인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멍하니 보기만 하다가 그만 조명을 못 껐어요. 옆에서 “안 끄고 뭐해!” 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황급히 조명을 조정했죠. 결국 조명이 평소와 달리 늦게 꺼졌어요. 심지어 당황한 나머지 빨리 켜버리기까지 했죠. 그때 <진품명품>을 봤던 시청자들은 조명이 평소와 다른 간격으로 꺼지고 켜지니 생뚱맞았을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다른 방송국도 많은데, KBS만 고집하시며 세 번이나 도전하셨던 이유가 궁금해요.

  KBS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이잖아요? 그래서 KBS에 몸을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KBS가 공정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말 그런지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사실 PD나 앵커가 아닌 기술자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잘못된 점이 있다면 제 힘이 닿는 대로문화를 바꿔보고 싶었죠.

  또 방송기술 연구소를 따로 만들어서 방송기술을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방송국은 KBS밖에 없어요. 다른 곳은 연구 조직은 있지만 연구소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술인 입장에서 이렇게 인프라 측면에서도 우수하다는 점에 끌렸죠.

  대학시절 본교 교내방송국인 SSBS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셨습니다. 방송인의 꿈은 이때부터 시작된 건가요?

  방송인이라는 꿈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언젠가 동네에 홍수가 난 적이 있어요. 홍수가 나서 주민들이 학교 강당에 대피해 있었는데 여기에 TV를 설치해주러 KBS가 왔죠. KBS 마크를 단 직원들이 TV를 설치하고 안테나를 달아주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방송인과 KBS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됐어요. SSBS는 방송인이라는 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줬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방송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SSBS 활동을 통해 방송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게 됐고, 또 제가 하고 싶었던 방송기술은 프로그램이 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남들은 몰라줄 수 있지만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웠어요. 어쩌면 직장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죠. 아침부터 나와서 방송을 준비하는 등 매우 고된 나날이었음에도 이를 즐겁게 하고 있다는 것이 제겐 중요했어요.그때 ‘이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정말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요.

  LG 디스플레이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셨는데, 회사생활은 어떠셨나요? 회사생활에 만족하지 못해서 KBS에 다시 입사하신 건가요?

  회사생활은 괜찮았어요. KBS 입사 준비를 위해 퇴사한 2012년까지 약 9년 정도 근무한 것 같네요. 일도 꽤 잘했고, 승진도 잘 돼서 그야말로 탄탄가도였죠. 그런데 과장까지 승진을 하니까 갑자기 ‘회사 생활을 끝까지 참을 만은 하겠는데, 재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이란 감정이 있었던 거죠. 금전적으로는 굉장히 풍족했어요. 사실 금전적으로만 보면 KBS에 합격한다고 해도 LG에서 받았던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었죠. 더해 사회에서 누구나 인정해주는 대기업이라는 든든한 소속도 있었고요. 나쁘지는 않았어요. 정말 나쁘지는 않았는데, 즐거움이 없었어요. 이 생활을 10년, 20년 더 하고 뒤돌아보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른 여섯이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 생각하고 과감히 사표를 썼죠.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스스로 느끼는 실패의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고요.

  KBS 기술직의 입사경쟁률이 높을 때는 70대 1 정도까지 돼요. 그래서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죠. 퇴사 당시 제가 결혼 2년차였거든요. 대학 졸업 후 떨어졌던 경험도 있어서 위축되기도 했고요. 그래도 주변에서 큰 반대는 하지 않았어요. 특히 제 아내가 찬성해줘서 고마웠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공감해주고 지원도 해줬거든요. 양가 부모님 역시 별 말씀 하지 않으시고 저를 믿어주셨어요.

  하지만 역시 사회생활을 하다 그만두니까 중간에 스스로 좌절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한 번 떨어지고 나니까 더 그랬어요. 제 또래는 이제 중년에 가까운데 이쯤 되면 보통 과장이나 부장이 돼서 안정을 찾거든요. 그런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뭘 하는 걸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었어요.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아내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항상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거든요. 금전적인 문제의 경우 아내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래도 밖에 잘 나가지 않고 밥도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해먹으며 최대한 아끼려고 했죠.

  합격하셨을 때 기쁨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꿈같았죠. 어릴 때부터 생각해 왔던 일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취업이라는 힘들었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이 후련했어요. 훗날 들으니 제 합격에 아버지가 펑펑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남자로서 제가 처한 힘든 상황을 이해하셨기에 그랬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내가 가장 기뻐해줬어요.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동경심도 가지는 것 같아요. 이에 자극받아 자신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어요. 이젠 제가 아내를 도와줄 차례인 것 같네요.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할 거예요.

  KBS 입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합격을 위한 팁을 준다면 뭐가 있을까요?

  각 직군마다 문제가 다르니 그냥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서 얘기할게요. KBS는 전공 및 시사·용어 시험 등 모든 문제가 다 주관식이에요. 1500자 이상 써야 하는 논술 문제도 있고요. 단기적으로 공부해선 절대 합격할 수 없죠. 오랜 기간 동안 글을 많이 읽고, 또 많이 써봐야 해요. 이를 위해 종이 신문을 많이 읽으세요. 인터넷 신문은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게 되기 때문에 좋지 않아요. 더해 한 사안에 대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또 타인을 설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의견도 낼 수 있어야 해요. 이는 최종 면접을 위한 것이에요. 최종 면접은 주제를 주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묻거든요. 이를 통해 방송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를 평가하려고 하는 거죠.

  끝으로 KBS를 준비하는 후배들만이 아닌, 모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단순히 스펙만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 시절은 많이 부딪혀 보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뭘까 고민해야 되는 시기거든요. 공부만 한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찾을 수는 없죠. 후배들이 공부만 하는게 가장 안타까워요.

  고민 끝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면 이젠 하고 싶은 이유를 계속 써보세요. 이렇게 쓰다보면 자신이 이걸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나오고, 이 의문의 해답을 고민하게 돼요. 그리고 마침내 이 해답을 찾는다면 처음에 막연하게 가졌던 자신의 꿈이 훨씬 진지해지고 단단해졌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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