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가난 앞에서 소년은 어떤 희망도 가지지 않았다. 희망은 사치라고만 생각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어서 어른이 돼 돈을 버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년 앞에 컴퓨터가 나타났다. 컴퓨터를 통해 소년은 처음으로 희망을 가졌다. 삶의 이유를 찾았다. 이후 소년은 컴퓨터 뿐만 아니라 발명과 창업 분야에서 종횡무진하며 20여 개의 대회에서 상을 받는 전도유망한 청년이 됐다. 컴퓨터를 만나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김동은(컴퓨터·3)군. 자신처럼 어려웠던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고 싶다는 김 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9월에 열린 대만 국제발명전시회에서 동상 및 3개국 특별상을 수상한 ‘캐리 웨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캐리 웨어는 허리와 연결하는 유모차 보조손잡이에요. 내리막길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막아주고 주행 시 발생하는 손목 통증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만들었어요. 어떤 유모차에도 부착할 수 있고 사용자마다 다른 걸음걸이에 맞게 보폭 조절도 가능해요. 360도로 회전할 수 있어서 방향도 자유롭게 바뀌죠. 불빛도 날 수 있게 해 야간에 사람들이 유모차를 볼 수 있게 했어요. 대만 국제발명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이 와서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반응이 대단하겠다며 아이디어를 팔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지금은 원형에 불과해서, 부족한 점을 더 보완하고 있고 국제 특허도 내려고 준비 중이에요.

 

  이만큼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아이디어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세계에서 통할지는 의문이었죠. 그런데 대회를 나가 다른 발명품들을 보니 상을 타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다른 발명품들은 좋기는 했지만, 상을 타기 힘든게 많았어요. 기존에 있는 것이 약간만 변형된 형태였거든요. 예를 들면 빛과 소리가 나는 가방이 있었어요. 밤늦게 등산용으로 만들었다는데, 이런 제품은 한국에서 많이 봤거든요.

 

  발명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항상 기존의 것에 의문을 가지려고 해요. ̒정말 이게 최선일까?'라는 식으로요. 이런 생각이 습관이 됐어요. 고등학생 시절에 발명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가진 버릇이에요.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항상 발명 아이디어를 고민해요. 캐리 웨어 같은 경우도 비슷해요. 저랑 같이 발명품을 기획하던 멤버들이 있었는데, 이 중 한 명이 내리막길에서 유모차가 굴러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 나라면 저걸 막을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해 캐리 웨어를 떠올렸죠.

 

  발명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손잡이의 재질 문제가 있었어요. 처음 만들 때 ABS라는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했어요. 이를 유모차랑 연결시키고 내리막길에서 굴려봤는데 뚝 부러져 버렸어요. 실제상황이었으면 큰일이죠. 그래서 더 단단한 알루미늄 재질로 바꿨어요 . 또 대만에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네요. 대회 시작 전날 허리에 차는 벨트를 연결하는 똑딱이가 부러진 거예요. 물건을 캐리어에 넣어 비행기 화물칸에 그대로 실었는데, 비행 과정에서 충격을 받았나 봐요. 그래서 타이페이 시내를 다 돌아다니면서 똑딱이를 찾아봤죠. 지리도 전혀 몰라서 무작정 부품이 있을만한 느낌이 드는 곳들을 뒤져봤어요. 한 3시간 정도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간신히 똑딱이를 파는 가게를 찾았는데, 중국어를 못하니까 부러진 똑딱이를 보여주면서 이거 달라고 손짓발짓으로 얘기했어요. 구입해서 호텔에 가져왔는데 똑딱이 위에 자물쇠까지 달려 있었어요. 자물쇠를 잘라냈죠. 잘라낸 뒤 거칠어진 부분을 납땜기로 인두질까지 하면서 매끄럽게 만들었어요. 인두질에 전기가 너무 많이 사용되다 보니 호텔 방의 전기가 차단되기도 했어요.

 

  원래 전공은 컴퓨터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컴퓨터는 전공을 넘어선 제 인생의 빛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릴 적 저희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기초생활수급자였으니까요. 동생도 3명이나 있어요. 요즘 우리 사회가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어졌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그 사실을 일찍 알았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아무 희망이 없었어요. 그냥 학교에 가방만 가지고 왔다 갔다 했죠. 중학생 때는 신문배달을 했는데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신문 돌리고 학교 가서는 잠만 잤어요. 이렇게 살다 보니까, 사는 것이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였던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 집에 온 컴퓨터 수리기사 아저씨가 뭘 이것저것 만지더니 5만 원을 받아가는 모습을 봤어요. 어린 마음에 쉽게 돈을 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집 근처 공공 도서관에 가서 PC 정비책을 빌렸어요. 그 책을 참고하면서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컴퓨터 본체들을 고쳐보곤 했죠. 처음엔 돈을 벌려고 했었는데, 의외로 재밌더라고요. 재미있어하다 보니 실력도 자연스레 늘어서 친구들 컴퓨터를 고쳐주기 시작했죠. 나중엔 학교에 컴퓨터 박사라고 소문이 났어요. 선생님들도 컴퓨터가 고장나면 저를 찾았고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았던 시절이었죠. 제 삶이 처음으로 가치있다고 느꼈어요.

 

  고등학교도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인터넷 고등학교에 진학하셨어요.

  원래 고등학교 입학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집도 가난하고 부모님도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그냥 취직해 돈 벌겠다고 했죠.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충남 인터넷 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 분이 직접 저를 보러 오셔서 저와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너는 꼭 컴퓨터를 공부해야 한다.”라며 인터넷 고등학교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정말 고등학교에 입학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집 형편에 고등학교는 어렵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이 학비랑 기숙사비, 그리고 식비도 면제해 주겠다고 했어요. 또 아버지께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달라고 전화까지 하셨고요. 이런 설득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선생님을 만난 것은 운이 좋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거든요. 고등학생 생활은 재밌었어요. 중학생 때는 컴퓨터 수리만 했는데, 프로그래밍이나 네트워크, 웹디자인처럼 새로운 전공들을 배웠거든요.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졸업도 수석으로 했어요. 뿐만 아니라 자격증도 6개 정도 따고 컴퓨터와 관련한 대회에서 금·은상도 여러 번 수상했어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만나 추억도 많이 쌓았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 본교 컴퓨터학부로 진학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컴퓨터학부를 택한 것은 우선 고등학교에서 본교 컴퓨터학부에 대한 좋은 평가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커리큘럼도 확인해봤는데 탄탄하더라고요. 우리 학교만큼 프로그래밍과 개발 실력을 확실히 길러주는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힘들게 공부하기 때문에 어느 회사를 가도 우리 학생들이 인정을 받아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본교 컴퓨터학부 졸업생들이 일을 잘한다고는 하지만 CEO가 몇 명 없더라고요. 국내 최초의 컴퓨터학과라서 역사도 긴데, 왜 이럴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가만 보니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하더라고요. 수업도 주입식 교육으로만 진행돼요.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수업들이 있죠. 하지만 컴퓨터 분야는 변화가 빨라 창의성, 도전성을 요구하는 학문이에요. 그럼에도 학부에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만 받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더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에 맞는 교육을 학과에서 했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최종 목표는 뭐예요?

  우선 창업할 거예요. 컴퓨터 칩과 통신 기능을 특정 사물에 내장하는 ‘사물 인터넷’을 가지고요. 사물 인터넷은 좀 생소한 개념인데, 예를 들면 베개가 있어요. 여기에 칩을 넣어요. 집에서 남자친구가 베개를 베면 여자친구의 베개에 불이 은은히 켜져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서로 몸은 떨어져 있지만, 연결돼 있는 거예요. 이처럼 감성적인 아이템으로 승부해볼 생각이에요. 창업은 졸업 전에 할 거예요. 흔히 졸업 후 돈 벌어서 창업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는 너무 안일한 것 같아요. 취업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지위도 생기고, 가족들도 부양해야 하잖아요.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거죠. 결국 창업을 안 할 거예요.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나 못하는 거예요. 시기적으로도 현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청년 창업지원금으로 수천 억 원의 돈을 풀고 있어요. 이 흐름을 타야 해요. 내 돈 들이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승부할 수 있거든요. 창업은 하나의 과정이고, 제 인생의 최종 목표는 컴퓨터로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제가 컴퓨터로 인생의 빛을 봤던 것처럼요. 저는 컴퓨터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컴퓨터가 정말 좋거든요. 누구든지 컴퓨터 앞에서 똑같은 기회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어떻게 쓰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잖아요. 제 목표의 일환으로 지금 KT 드림스쿨이라는 곳에서 멘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지역 아동센터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컴퓨터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가르치고 있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들을 지도해주는 것인데요. 앞으로는 이 아이들 뿐 만 아닌 국내, 더 나아가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컴퓨터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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