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윤성준 수습기자 caffein@ssu.ac.kr
  김연수는 늘 글을 써왔다. 김연수의 소설은 밑줄을 긋게 만드는 아름다운 문장과 따뜻한 속삭임을 지녔다.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인물들은 연령층에 관계 없이 공감을 이끌어 낸다. 김연수는 장편 소설 <원더보이>, <세계의 끝 여자친구> 및 산문집 <소설가의 일> 등을 펴냈다. 김연수가 기억하는 글과 세계에 대해 들어보자.

  작은 도움

  글쓰기는 제가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아했던 시인 한 분이 계셨어요. 그 시인께서 제가 쓴 글을 보고, “글을 잘 읽었습니다.”라고 편지 봉투에 적어서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제겐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글쓰기는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도움을 주고받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이렇게 쓰세요, 이렇게 쓰면 안 돼요.”라고 말해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글쓰기에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요구할 것들이 많지는 않아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글쓰기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생겨먹은 우주

  사실 저는 글을 쓰려고 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장래 희망은 천문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하지만 제가 주장하는 우주는 안 좋은 곳이에요.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어렵게 만들어 놨어요. 굉장히 노력해야지만 원하는 것을 겨우 얻게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천문학자가 못 되고 뜻하지 않게 영문과로 진학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영문과에 적응을 못 했고, 주로 ‘왜 나는 천문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영문과에 오게 됐을까?’라는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아요. 그냥 우주가 그렇게 생겨먹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다 원하고 있거든요. 걔네들하고 붙었다가 나가 떨어지고 만 거죠. 나만 원하는 거라면 다 이뤄질 텐데 말이에요.


  1인칭만의 세계?

  영문과에 다닐 때 시간이 많이 남아서 도서관에 자주 갔어요. 특히 정기간행물실에요. 늦게 일어나니까 열람실 자리는 맡을 능력이 못 됐죠. 정기간행물실에서 잡지를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 문예지를 보게 됐죠. 문예지에 평론이 실려 있어서 읽어봤더니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고민을 하다 평론에 실린 작품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동시대 문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배운 적이 없었죠. 아무리 최근 것이라 해도 일제강점기 때 쓰인 작품이 다였어요. 그러니 안 읽은 소설들이 태반이었죠. 시집도 그렇고요.

  그렇게 두 달 정도 글을 읽었어요. 사람은 영향을 많이 받아요. 우리는 1인칭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순수한 1인칭만의 세계는 아니에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끼치죠. 이런 식으로 영향을 받으며 인생의 행보가 계속 바뀌어요. 멀쩡하게 공부를 하다가도 갑자기 그만두는 일이 생기잖아요. 심지어 신문 기사에도 영향을 받아요. 사소하게 읽은 기사였는데 시간이 지나 크게 작용을 해서 인생이 바뀌고 그래요. 저는 계간지에 실린 작품들을 읽었을 뿐인데 결국 영향을 받게 됐어요.


  처음은 공책 한 권

  처음엔 쓰기 시작해요. 잘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러다 점차 이 글이 뭔지 헷갈리게 되면서 시처럼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시 같은 것들을 쓰게 됐어요. 그랬더니 근사해요. 진짜 시처럼 보이는 거예요. 재미도 있었죠. 한 번도 안 해봤던 일이니까. 공책 한 권을 사서 생각나는 대로 막 썼어요. 제목은 ‘정기간행물실에서 1’, ‘정기간행물실에서 2’, ‘정기간행물실에서 3’. 내용은 낮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바뀌기도 하구요. 난해한 글들이었어요. 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썼어요. 시가 끝없이 나왔어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시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구요. 그 정서들을 조금씩 골라서, 공책에 적습니다. 이렇게 3개월 정도를 쓰다 보니 공책 한 권이 다 채워졌어요. 그랬더니 공책 앞에 처음 쓴 시와 공책에 마지막에 쓴 시에 차이가 있더라고요. 처음에 쓸 땐 몰랐는데, 뒤까지 쓰고 나니 앞에 쓴 시를 얼마나 못 썼는지가 보였어요. 계속 쓰다 보니까 글 쓰는 실력이 늘어난 거예요.


  글을 잘 쓰는 방법

  이 때부터 온 힘을 다해 글을 썼어요. 잠도 안 자고 썼죠. 그리고 친구들에게 보여줬어요. 노력을 했으니, 제가 보기엔 너무 잘 쓴 글이었거든요. 하지만 친구들이 다 비판만 하는 거예요. 처음엔 그 얘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친구들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죠. 이 상태가 아주 위험한 상태예요. 이렇게 해서는 평생 글이 잘 써질 리가 없어요.

  누군가가 와서, “진짜 못 쓴 글이구나.”라고 해도 납득을 해야 해요. 그래야 개선의 여지가 생겨요. 물론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아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 듣지 말고 스스로 확인하는 거예요. 나중에 좋은 글을 쓰면, 처음에 얼마나 못 썼는지 알게 돼요. 깨닫고 난 후, 더 좋은 글을 쓰면 되죠. 근데 이게 어려워서 글쓰기가 어려운 건가 봐요.


  본격적인 시작

  글쓰기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어요. 처음에는 워낙 못 썼고요. 때문에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잘 쓸 수 있게 됐구나.’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한 번 더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 공책을 다 채웠더니, 이젠 첫 번째 공책을 버려야 했어요. 예전보다 글이 더 좋아졌거든요. 이 과정을 2년 정도 반복했어요. 점점 글이 잘 써지는 게 참 좋았어요. 드디어 글에 빠지게 된 거예요.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시가 많이 쌓여 있었어요. 시를 좋은 순서대로 고를 수 있는 힘도 생겼어요. 오랜 시간을 글을 쓰며 보냈으니까요. 그 힘으로 좋은 순서대로 시를 놓아 봤죠. 다섯 편의 시가 추려졌어요. 내가 썼지만 최고의 시라고 생각됐죠. 그래서 그 시들을 투고했어요. 곧 시인으로 등단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죠. 이것이 본격적인, 글쓰기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해요.


  소설가의 긍정

  글을 쓰면서 저 자신에게 비난을 하지 않았어요. 스스로가 점점 좋아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요. 제 자신을 비난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어요. 내가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지도 않았고, 언젠가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하지 않았어요. 계속 저 자신에게 격려를 해줬어요. ‘나에겐 몇 권의 공책이 있다. 그리고 계속 좋아지고 있다.’ 이렇게요.

  격려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글쓰기의 고통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잖아요. 머리를 쥐어짠다거나, 샤워기를 틀어놓고 마구 울고……. 물론, 저도 몇 번 해봤어요. 걸어 다니면서 저를 막 때렸죠. 왜 아무것도 생각을 못할까, 왜 모를까. 너무 바보 같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고통으로는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마감이 가까워졌다고 가정해 보세요. 책 마감이 임박해 있고, 못 하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죠. 두려워요. 사실 마감 안 해도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데 말이에요. 지구가 무너진다거나, 나라에 전쟁이 일어난다거나하는 일은 없어요. 아무 문제도 없는 거죠.

긍정 속에서, 즐거움 속에서만 좋은 글쓰기가 가능해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글쓰기

  저도 오랜 시간 글을 써왔고, 힘든 과정을 보냈어요. 고통스럽진 않지만 힘들고 긴 과정이었죠. 소설가들은, 글쓰기에 오랜 시간을 쏟아 부어요. 1년도 걸리고, 어떤 것은 10년도 걸리죠. 구상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쓰고 고치고 하죠.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소설이 나오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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