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를 거니는 것은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몽환(夢幻)적이다. 섬과 섬을 잇는 작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요단강’을 넘는 기분으로 빠져든다. 다리 밑을 지나가는 곤돌라(Gondola)는 천국의 입구를 수놓는 ‘흔들리는 장식’처럼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탈리아 말로 곤돌라는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니 나의 느낌이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도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 천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행 중에 터득한 나만의 ‘감탄의 과장법’일 듯. 그러나 유럽의 어디를 가도 이렇게 바다 위에 건설되어 장관을 연출해내는 도시는 없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베니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주도(州都) 베네치아에 들어섰다. 물이 많은 도시를 ‘동양의 베니스’, ‘북유럽의 베니스’, ‘남미의 베니스’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은 베네치아가 가진 ‘물의 아우라’가 최고라는 것을 입증한다.

 

  베네치아는 한 때 해상무역을 ‘싹쓸이’했을 정도로 지정학적인 요충지 였으며, 그러다 보니 유럽의 모든 금융자본은 이 도시로 유입되었다.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돈을 주무르는 세력은 유대인들이었는데, 특히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을 게토(Ghetto)라고 불렀다. 게토는 이탈리아말이고 베네치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다가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고 하니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살았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 필요악으로서의 돈은 대부업을 번성시켰고, 고리대금(高利貸金)의 폐해가 속출했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of Venice)>은 결코 우연히 탄생한 작품이 아니었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 샤일록은 돈이라면 사람의 목숨을 가져갈 수도 있는 음흉하고 사악한 베네치아 유대인 상인의 이미지를 지금껏 대변하고 있다. 이 도시의 유대인들이 정말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면서 사람들을 착취했는지, 아니면 반유대주의가 만들어낸 허구인지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월등히 비싸고,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 음식 값을 바가지 씌우는 상혼(商魂)을 몇 번 경험하면 왠지 상술(商術)을 넘어선 사기인 것 같아 명작의 주인공을 아니 생각할 수 없음은 나만의 느낌일까.

 

곤돌라는 베네치아를 더 베네치아답게 만드는 도시의 장식물이다.

  <사계(The Four Seasons)>로 유명한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Vivaldi)의 생가를 보고, 나폴레옹 황제가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살롱(salon)’이라고 표현한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에 다다랐다. 참 멋있고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황제의 느낌과 나의 느낌은 얼추 같은 표현으로 수렴된다. 시대와 대륙의 차이는 인간의 느낌이라는 본질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온난화의 영향으로 베네치아가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어 건축가와 도시행정가들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는 사실을 나폴레옹이 안다면 황제로서 어떤 지시를 내릴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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