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자신만의 꿈을 마음 한켠에 고이 모셔놓고 있지 않은가. 평생을 격투가로 싸우면서 보내는 사람도,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며 사는 사람도 마음 깊은 곳에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음식과 건강에 대한 열정으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격투기 선수 출신 프랜차이즈 ‘홍익전통육개장’의 곽성익 대표

사진 윤성준 수습기자 caffein@ssu.ac.kr

 

 

아픔으로 자란다

  저는 인천의 간석동이라고 하는 달동네에서 태어나 굉장히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전기세를 못 내서 촛불을 켜 밥을 먹고 단칸방에서 4식구가 살을 부대끼며 자야 했죠. 그래도 저는 그 시절이 불행했다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뇌종양 판정을 받으시면서 가세가 더욱 기울기 시작했어요. 돈이 없어 친척들에게 치료비를 빌려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아버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내가 가장으로 강해져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했죠. 운동을 해서 육체적으로 강해지면 가장의 책임을 부담하기 쉽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것이 격투기입니다.

  10년 정도 투병하시던 아버지는 제가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고, 저는 얼마 안 있어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을 해 제대 후 집안을 돕겠다는 계획과 달리 군대에서 하는 일들은 실망스럽기만 했어요. 그러나 그 곳에는 고위 간부들이 이용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드디어 요리에 첫 발걸음을 들여놓게 됐어요.

 

사람의 마음을 요리하다

  간부 식당에서 일하는 고참이 격투기를 가르쳐 주면 주말마다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 저는 맛있는 음식보다 고참이 요리를 하는 모습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누나와 단둘이 살며 해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면서 2년간 차라리 요리를 배워 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고참의 배려로 식당에서 취사병으로 일하던 어느 날 육개장을 타 부대 장성의 식사메뉴로 내놓았는데 한 간부님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내 생애 먹었던 육개장 중 가장 맛있다.”라고 하면서 “제대 후 식당을 차려
라.”라고 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엄청난 보람을 느끼고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제대 후 유럽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 결과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저는 또 한 번 육개장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됐죠.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찾은 한인식당의 사장님께 육개장 요리 실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그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입소문이 나며 한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사장님은 제게 브리지벤에서 동업할 것을 제안했죠.

 

뜻밖의 고난, 그리고 극복

  그러던 중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는데 급한 목소리로 어서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만 하셨어요. 상황을 모르는 저는 성공을 눈앞에 두고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버텼죠. 결국 어머니는 누나가 백혈병에 걸렸으며 골수이식을 필요로 하는데, 제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밝히지 않으려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한국으로 달려왔고 다행히 골수가 맞아 수술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결국 누나는 2년 만에 병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받던 중 아버지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게 됐습니다.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함께 저는 꿈 또한 잃어버리게 됐어요. 호주나 요리, 육개장에 대한 꿈은 까맣게 잊은 채 한국에서 트레이너로서의 삶에 만족했어요. 오히려 일하던 헬스 센터의 매니저님 같은 안정적인 삶을 동경하기까지 했었죠.

  헬스 센터 회원들 중 제가 롤모델로 삼는 회원이 한 분 계셨어요. 철강사업을 하시는 약 60세의 여자회원님이셨는데 자식도 잘 키우셨고 사업도 성공시킨 분이었죠. 그 분이 해준 말씀을 듣고 전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매니저님을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저렇게 젊은 나이에 한 번뿐인 인생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는 게 굉장히 불쌍해 보여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저 역시 안정적인 삶과 도전하는 삶 사이의 저울에서 안정적인 삶으로 기울어져 있더라고요.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저는 잊고 있던 제 꿈을 향해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육개장 전문점을 열기로 하죠. 다른 육개장과 차별화를 뒀습니다. 바로 주재료인 고사리와 토란을 빼고, 파와 고기만 넣고 끓이는 육개장이었어요. 사람들은 다들 걱정했어요. 하지만 저는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성공여부는 어떤 실패를 경험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뛰다가 넘어졌다고 해서 낙오자가 아니에요. 진짜 낙오자는 넘어지는 게 두려워서 뛰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성공했어요. 매출이 늘고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이 시작되면서 가맹점도 늘어났죠. 여기 계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젊음이 주어졌을 때 겁먹지 말고 도전하라고.

 

 

건강식품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정종철

 사진 윤성준 수습기자 caffein@ssu.ac.kr

 

 

인생의 기회를 잡고, 최대한 노력할 것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찬스들이 찾아오거든요. 저는 그것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만약 기회가 빗방울이면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 먹구름이 잔뜩 껴서 비가 막 내립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비에 적게 젖고 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비에 많이 젖고 이러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 똑같이 젖습니다. 그 빗방울을 많이 모으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거예요.

  성공을 위한 노력은 그릇을 만들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빗방울을 받기 위한 그릇의 재료이죠. 흙이 될 수도 있고 유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커질수록 여러분의 재능 또한 커집니다. 여러분의 그릇 사이즈가 내 옆에 있는 사람, 롤모델, 경쟁자들보다 커져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길 바랍니다. 또 이 강의를 통해 여러분들이 인생의 기회를 잡고, 노력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개그맨이라는 꿈, 그것을 담기 위한 그릇

  사실 저는 어릴 때 개그맨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저는 내성적이고 존재감이 없었거든요. 중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어요. 굉장히 외향적이고 유쾌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유쾌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개그맨을 해 보라고 그 때 많이 이야기 했어요.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니 점점 사람들 웃기는 일이 좋아졌죠.

  꿈이 생기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돼지저금통을 따서 녹음기를 사는 것이었어요. 저는 촌에서 자라서 동물 소리 내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모든 소리를 녹음해서 연구하고 따라할 생각이었거든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개그맨이 되기 위해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연습했어요. 좌뇌, 우뇌 중 좌뇌가 더 발달하면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듣고 녹음기를 사서 왼쪽 귀로만 들었어요. 그 결과 지금도 왼쪽 귀가 잘 안 들려요. 듣고 따라하고 열심히 연습했어요.

 

개그맨이 되기 위한 빗방울을 맞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냉면집 아르바이트로 당시 또래 친구들보다 꽤 괜찮은 월급을 벌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계속 개그맨이 되고 싶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TV를 켰는데 개그콘서트가 나오고 있었어요. 심현섭 씨가 개인기를 보여주는데 그전까지 개인기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었던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연습했던 것들을 개인기로 선보이고 있었던 거예요. 심지어 할 수 있는 개인기 수도 제가 더 많아서 화가 났죠. ‛저 양반은 저렇게 꿈을 펼치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기회가 되면 저 양반이랑 어디서든 한 무대에서 개인기 대결 한 번만 했으면 좋겠다.’

  그 순간 제가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렸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저한테 떨어졌던 거예요. 자막이 지나가는데 “KBS에서 새 식구를 모집합니다.” 그리고 모집요강에 “대한민국 성인남녀 누구나”라고 쓰여 있었죠. 저에게 찾아온 기회라 생각하고 당장 준비를 해 다음 날 KBS로 갔어요. 원서 마감이 다섯 시였고, 시계를 보니 세 시 반이었어요. 한 시간 반밖에 안 남았는데 줄이 끝도 없어서 불안해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줄이 확 당겨지면서 줄이 엉켰어요. 그 때 맨 앞에서 원서를 나눠주던 여자 분이 오더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저에게 “어! 개그맨 시험 보러 왔죠? 이리 오세요!”라고 말했어요. 그 순간 제가 눈에 띄었던 것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 있었던 일도 놀라운 기회의 연속이었죠. 지원서에 원고, 즉 제가 준비한 개인기를 글로 서술하라고 나와 있었는데 동물 소리와 비행기 소리, 차 소리 등을 준비했던 저는 음성어를 소리나는 그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합격을 하더군요. 어떻게 된 것인지 나중에 물어보니 피디들이 개그맨들의 합격을 논의하는 회의 시간에 KBS 사장님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원고 중 끄집어낸 원고가 제 원고였죠. 어이없어하는 사장님을 본 피디가 그 자리에서 불합격시키려고 하자 사장님이 그걸 딱 뺐더니 “왜 이런 식으로 썼는지 물어나 봐요.”라고 말씀하셨대요. 이유만 물어보려고 불렀는데 직접 보니 재밌어서 합격을 시킨거죠. 전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운이 아닌 제 인생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그 기회를 잘 잡았다고 생각하고요.

  여기서 두 가지 물음을 던져봅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녹음기를 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제가 적절한 순간에 기회를 잡지 못했더라면? 사람들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회들이 찾아옵니다. 그 생각과 확신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의 그릇, 여러분의 사이즈에 맞는 그릇, 노력을 해야만 마땅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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