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자와 최연소자가 한 자리에서 함께 나누는 졸업이야기

 

다른 학우들보다 늦은 나이, 이른 나이에 졸업하셨는데요.
이미선(이하 ‘이’): 저는 2002년에 편입을 했어요. 그러다 그해 12월 영국으로 가게 됐어요. 영국에서 12년 정도를 살았죠. 그 바람에 늦게 졸업을 하게 됐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그해 바로 졸업을 했을 거예요.
 

허아름(이하 ‘허’): 딱히 사연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빠른 93년생이거든요.(이번 졸업 대상 학번인 11학번은 92년도 생) 그래서 숫자상으로 이른 나이에 졸업을 하게 됐어요. 휴학을 하지 않고 쭉 다니기도 했고요.
 

 

학우들과 다른 나이에 졸업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이: 극복해냈다고 생각해요.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든 적이 많았어요. 나 자신만의 싸움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죠. 학생들과 나이 차이도 있고요. 하지만 끝까지 마쳐보니, 잘 한 것 같아요.
 

허: 친구들이 휴학을 많이 하다 보니 제가 제일 먼저 졸업하게 됐어요. 뭐든지 원래 처음이 주목받는 거잖아요. 챙겨주는 친구들도 많고, 졸업 축하도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어요. 그런 점에서 좋았어요.

 


남들과 다른 나이로 인해 벌어진 일 중, 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이: 지금은 다른 학교로 갔지만 제 친구가 숭실대에서 교수로 있었어요. 후배가 교수로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학생보다는 교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렇지만 몸은 학생들과 함께 있어서 학생들이 싫어하는 교수님을 알게 됐어요. 이걸 교수님한테 가서 솔직하게 말해줄 수는 없었죠. 그 대신 학생들과 교수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수업 때 교수님께 커피를 사다 드려 분위기를 완화하는 식으로요.
교수님들이 공부를 어렵게 시키든, 쉽게 시키든 모두 진심껏 가르치세요. 학생들이 이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마냥 싫어하는 모습만 보일 때는 조금 안타까웠어요.


연: 1학년 때요. 술집을 가면 동기들은 모두 20살인데 저만 19살이라, 제 주민등록증으로는 출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친구 것을 빌려서 가고 그랬어요. 그때는 불편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추억이네요.

 


학교생활하며 특히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허: 제가 지방에서 왔거든요. 경상남도 마산. 그래서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자취를 했어요. 갑자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게 된 거잖아요. 외롭고 낯설었어요. 자금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아플 때도 힘들었고요.
그리고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가치관도, 성격도 모두 각양각색이었죠. 이 사람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게 조금 어려웠어요.


이: 일단 어학 문제가 컸어요. 저는 문학이 좋아서 영문학과에 왔어요. 어학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죠. 그런데 원어 수업이 너무 많은 거예요 .또래 친구가 없었던 것도 힘들었죠. 차차 친해져 도움을 준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어요.
학교 시스템이 바뀐 것도 어려움이 컸어요. 다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예요. 못 쫓아가겠더라고요. 온라인 수강신청도 어렵고, 열람실 좌석 배치를 자기가 하는 것도 어색했어요.
또 강의실 앞에서 하는 프레젠테이션 발표도 쉽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쉽지 않았어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죠. 12년 전에는 프레젠테이션 발표가 거의 없었거든요.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있었어요. 시대가 많이 바뀐 거겠죠.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는 훈련이 필요하니까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지금 세대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됐어요. 저는 두 세대를 사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저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졸업 후, 계획이 있다면요?
허: 저는 제 전공과 관련된 본교의 IT나 컴퓨터 관련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에요. 공부를 더해서 전문적인 영역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졸업을 하긴 하지만 학교를 아예 떠나는 것은 아니네요.


이: 전도작가가 되는 거예요. 제 새로운 꿈이에요. 첫 번째 꿈은 이뤘어요. 선교사가 된 거에요. 작년 재입학하기 전 전도 시집을 한 권 냈었어요. 똑같은 주제로 쓴 두 번째 책도 올해 안에 출판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곧 96년생인 15학번 친구들이 입학을 해요. 졸업하는 선배로서 새내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허: 제 친동생도 96년생, 이제 15학번이에요. 그래서 다른 신입생 학번보다 더 각별한 느낌이 들어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끊임없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그리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요. 그게 공부든 노는 것이든 아무 상관없어요. 대학을 다니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제 딸이 95년생인데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제 딸에게 종종 해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실 극단적으로 말해, 요새 어느 정도만 일하면 굶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스펙 쌓기에만 치중하지 말았으면 해요. 지금 당장 받는 연봉 금액이나,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돌이켜보니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세상 풍조나 남의 눈치 등에 신경쓰지 말고 꿋꿋하게 목표를 향해 가기를 바라요.
 

두 분은 25살의 나이 차이가 나시지만, 같은 대학생이며 같은 학사모를 쓰게 되세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은 참 신기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두 분에게 대학의 의미를 듣고 싶어요.
허: 시간표도 스스로 짜고, 수강할 전공 및 교양 과목이나 교수님도 자신이 선택하잖아요. 특히 저는 자취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대학은 이처럼 홀로서기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대학은 원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줄 수 있는 곳이에요. 저는 숭실에서 1년을 공부한 후 전도 책을 한 권 썼었어요. 이곳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론 혼자 책을 읽어 지식을 얻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다면 교수님과 친구들을 통해 훨씬 더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있죠.
10년이 흐른 후 또 대학생활을 하기는 어렵겠죠. 저에게 있어 꿈을 이룰 수 있고 힘을 얻을 수있는 마지막 기관이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입학하셨을 때 기억나시나요? 새내기 시절과 지금 특별히 달라진 것이 있나요?
허: 대학 생활은 매년 다 달라 새로웠어요. 하지만 가장 많이 달라진 걸 꼽자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가 넓어졌다는 거예요. 또 개인적인 목표도 늘었어요. 이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요.
 

대학 생활하며 특히 중점에 뒀던 것이 있나요?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허: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 이 둘 중 뭐가 중요하다고 얘기하기 어렵네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 때는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못 하지만 대학에서는 할 수 있잖아요.
 

동아리나 학생회를 하신 적이 있나요?
허: 네.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중앙 음악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화음을 맞춰서 같이 노래하는 동아리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어요. 관심만 있었던 것을 공연등을 통해 실제로 옮기는 과정이 뿌듯했죠.


한 번도 휴학하지 않으시고 쭉 학교를 다니셨어요. 바쁘시지는 않으셨나요?
허: 네. 사실 휴학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었고 음악 활동도 더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학업과 병행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몇 학기는 성적도 좋지 않았고, 많이 아프기도 했어요. 그래도 바쁘게 여러 일을 같이 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2002년에 편입하신 후, 12년 후인 2014년에 재입학을 하셨어요. 학교를 쉬시는 12년 동안 무슨 일을 하셨나요?
이: 영국에 가있었어요. 원래는 일이년 정도 잠깐 있다 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런던 로얄할로웨이 대학에서 목회를 하게 됐어요. 남편이 로얄할로웨이 대학 채플의 교목으로 있었거든요. 그렇게 12년 정도를 보냈죠.
그런데 대학생들 중에는 유학생들이 많이 있어요. 유학생들은 왔다가 다시 떠나잖아요. 이들을 지켜보다가 제가 고갈이 되어 버렸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었고, 정신적으로도 한계가 느껴졌어요. 오가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다보니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안식년을 길게 갖게 됐어요. 안식년 동안에 이 학교를 다시 찾았고 글도 다시 썼어요.
 

세대 차이를 느끼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아주 많죠. 12년 전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축구장이 온통 벚꽃나무 천지였어요. 벚꽃이 휘날리고 참 예뻤어요. 그 밑에 앉아 영시도 암송하고 시를 짓기도 했어요. 그때 학생들은 하루하루를 즐겼던 것 같아요. 속사정은 어렵더라도 분위기 자체는 그랬죠. 지금 학생들처럼 취업이나 장래에 대해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2년만에 다시 찾은 지금의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새로운 꿈을 위해 공부하는데, 친구들은 너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여기서 이질감을 느꼈어요.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쭉 나가다보면 길이 열리게 돼있어요. 하지만 이런 여유 자체가 없어보여요. 안타깝기도 하고, 이게 세대 차이인가 싶기도 했어요.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들은 이제 스무 살을 웃돌 텐데요. 동기들과의 호칭은 무엇이었나요?
이: 여학생들은 저를 언니라고 불렀어요. 남학생들은 대부분 선배님이라고 불렀고요. 이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후배를 알고 있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또 교수님들이나 조교 분들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저도 선생님이라고 불렀죠.
 

비슷한 연배의 친구 분들은 지금 다른 길을걷고 계실 것 같아요. 이제 대학을 졸업하는 것에 대해 친구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 정말 좋아했어요. 이번에 한 친구는 파카 패딩을 졸업 선물로 줬어요. 꽤 비싼 옷이기에 제가 놀라서 받아도 되냐고 물어봤죠. 공부를 끝까지 해낸 것에 대한 축하의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교수인 친구도 졸업식 날짜를 물어봤어요. 자기가 가겠다고요. 제가 ‘나는 졸업식에 안 간다’고 하니 왜 안 가느냐고 오히려 반문하더라고요.
이처럼 나이가 들어 다시 학생의 자리에 갔던 것을 친구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더라고요. 저도 놀랄 정도로 격려해주고 축하를 아끼지 않았어요. 학업을 마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12년 만에 대학 재입학을 결정하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머니로서 가족을 이끌고, 대학으로서 학교를 다니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 가족들은 흔쾌히 재입학을 하라고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을 다들 좋아해줬어요.
어머니와 대학생을 병행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딸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도 있었어요. 제 딸이 작년 9월에 대학생이 됐거든요. 저랑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한 것이죠. 딸은 영국에서, 저는 한국에서요. 그러다 보니 딸의 대학 생활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딸도 저를 친구처럼 잘 대해줬고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총 12년을 숭실과함께 보내셨어요. 정든 학교를 떠나시는 심정은 어떤가요?
이: 자기가 소속돼 있는 곳과 같이 성장을 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말이 있죠. 그곳이 회사든 학교든 말이에요. 소속된 곳과 내가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요.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정을 두었던 곳이잖아요. 평생 내 삶과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저는 12년 전의 숭실보다, 지금의 숭실이 더 발전됐다고 믿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또 제가 두 번째 꿈인 전도작가가 되어 성장을 한다면 숭실도 더 성장을 하겠죠. 제 마음 속의 신념이에요. 반대로 학교가 잘 돼도 저도 잘 될거예요.
저도 잘 되고, 학교도 잘 되고… 다 잘 되겠죠? 저는 그렇게 저 자신을 믿고 있으니까요.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