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럽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황제 나폴레옹과 독재자 히틀러는 이 도시를 함락시키기 위해 동진(東進)했다. 그러나 그들의 군대는 매서운 동장군(冬將軍)의 위력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파(寒波)는 러시아의 수호신이며 러시아인의 생활양식을 지배한다.

  유럽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고 아시아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이는 러시아.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3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말로만 듣던 동토(凍土)의 중심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불러 일으켰던 도시가 있었던가. 외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 관리들의 부정부패, ‘인터걸’로 통칭되는 불법매춘의 횡행, 잔악하기로 유명한 현지 마피아들의 지하세계, 러시아에 대한 이 모든 이미지는 도시의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는 나의 여행 스타일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위축된 생각의 기저(基底)에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학살의 역사와 어린 시절부터 받아왔던 우리나라에서의 철저한 반공교육이 깔려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스크바의 심벌인 붉은 광장을 거닐 때, 동화 속 궁전 같은 성 바실리 대성당의 울긋불긋한 색깔이 눈에 들어오기 보다는 무시무시한 군대의 열병식을 상상했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 푸시킨, 솔제니친 등 세계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러시아 문학가들은 내 머릿속에서 총검으로 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의 힘에 압도되고 말았다. 위대한 문학과 건축물은 군비경쟁과 공산주의 시대의 병폐와 함께 영원히 묻혀버리는 듯 했다. 모스크바를 도시로 인식하고 이곳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인공위성을 띄우고 핵무기 제조기술까지 갖춘 국가에서 국민들이 탈 자동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햄버거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긴 줄을 선 러시아 국민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외신을 통해 목도(目睹)해왔던 나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 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정적 시각은 모든 것을 나쁜 것으로 일반화시켜버리는 습성에 날개를 달아 줄 뿐이다.

  하지만 아르바트 거리를 채우는 예술혼과 젊은이들의 활기, 볼쇼이 극장에서 연일 상연되는 차이코프스키 음악과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발레, 모스크바 대학교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은 나를 점차 도시를 감상하는 여행객의 위치로 환원시켰다. 마치 성 바실리 성당에 채색된 다양한 색깔만큼의 러시아 위인(偉人)들이 문학과 예술의 깊은 발자취를 나에게 각인시켜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걷는 붉은 광장에서 군대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저 멀리 보이는 크렘린 궁전의 자태가 이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시어(詩語)로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모스크바는 역사의 긴 과정 속에서 한 순간에 벌어졌던 아픔과 오명(汚名)을 극복하고 미래에 있을 영광을 위대한 시인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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