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托鉢)을 보기 위해 먼 동이 틀 무렵 일어나야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 메콩 강이 뿜어내는 기(氣)를 받으며 오랜만에 맛있는 숙면을 취해서 인지 전혀 피곤하지 않다. 이상하리만치 머리가 가벼운 것은 한국에서의 ‘빨리 빨리’를 이 도시에선 모두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도시에선 ‘빨리 빨리’가 없다. 무슨 일이든 빨리해야 하는 한국 사람에게는 이렇게 느린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의 ‘빨리’는 좋은 뜻일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에서는 ‘빨리’라는 말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잠깐 상념(想念)에 잠겨 있는 동안 창문 밖에서는 승려들이 만들어내는 탁발의 장관(壯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인기척이 들리고, 나는 고산지대의 서늘한 아침 바람을 막기 위해 제법 두꺼운 점퍼를 입는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고도(高都)이자 고도(古都)인 루앙프라방의 이른 아침을 맞는다.

탁발은 루앙프라방의 도시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보시(布施)하는 사람의 간절한 표정과 보시를 받는 사람의 감사한 표정은 승려들이 입은 주황색의 법의(法衣)와 어우러져 도시의 분위기를 더욱 더 성스럽게 자아낸다. 주면서 받고 받으면서 주는 불교 의식을 보며 혼탁한 대도시에서 묻은 사악한 마음의 때의 씻어 낸다.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가 가진 철학적 깊이는 인정한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잠시 직선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철학으로서의 윤회(輪廻)를 생각한다.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보다는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둥근 원에서 인간만이 느끼는 고민을 토로하고 싶어진다고나 할까.

  호텔 로비에 마련된 작은 식당에서 느긋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루앙프라 방의 전경을 즐길 수 있는 푸씨(Phou Si)산에 올랐다. ‘해발 100미터의 언덕’ 이라고 하지만 난 그래도 산이라고 부르고 싶다. 폭이 좁은 칸 강이 드넓은 메콩 강으로 굽이쳐 들어가며 절묘하게 만들어낸 작은 반도 루앙프라방을 한 눈에 담아 본다. 산 위에 있는 금빛 사원 탓 촘씨(That Chomsi)는 이제 정오의 강렬한 햇빛을 받을 태세를 갖추 며 내 카메라의 피사체가 된다. 200여 년 전 이 사원을 설계한 사람과 이른 아침에 본 탁발 의식이 머릿속에 오버 랩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원을 만든 사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사원의 사진을 찍는 나.

  화려한 야시장으로 유명한 씨사왕 웡(Sisavangvong)거리의 정중동(靜中動), 형언할 수 없는 물의 색 꽝씨 폭 포(Tat Kuang Si), 이름은 몰라도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는 길거리 음식, 각기 다른 스토리를 지닌 크고 작은 사원들. 그리고 탁발이라는 화룡 점정(畵龍點睛). 음식을 주문하고 십 여분만 지나도 왜 빨리 안 나오느냐고 안달하는 사람들에게 루앙프라방을 권한다. 기다리는 것은 손해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라는 것을 이 도시는 가르쳐줄 것이다. 기다림은 늦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인생은 유한한데 왜 빨리 가려하는지 이 도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빨리 간들 무엇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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