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해결보다 ‘눈가리고 아웅’식 문제 해결, 학생들 반발 불러와…

 

  지난 2010년 11월, 경상대학교 등 전국 8개 국립대학교 학생 4,219명은 학교를 상대로 기성회비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2012년 1월 서울 중앙지방법원은 1심에서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으며 2013년 11월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2012년 5월, 전국 13 개의 국·공립대 학생 4,591명도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기성회비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 역시 1심과 2심 모두 학생들이 승소했다. 법원 판결 이유 는 “학교가 법적 근거 없이 징수한 기성회비는 부당이득이고 법적 효력이 없어 원고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성회비, 무엇이 문제인가

  기성회비 제도는 정부가 1963년에 당시 대학들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문교부 장관 훈령을 통해 제정한 준칙이다. 이 준칙을 근거로 대학들은 입학금 및 수업료와 별도로 기성회비라는 명목의 돈을 걷어 학교 운영비로 쓸 수 있게 됐다. 지난 1999년부터 사립대는 이 기성회비를 수 업료와 통합해 ‘등록금’으로 일괄 징수해 왔으나 국·공립대는 통합하지 않고 비중을 키워 현재는 등록금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 금액을 따로 걷고 있다. 이러한 기성회비에 대해 국·공립대 학생들은 학교가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사립대와 달리 국·공립대는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국가임에도 기성회비를 따로 걷는 등 대학 운영 경비 부담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 이다. 또 기성회비가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 지하고 있음에도 그 관리 및 인상여부가 대학 자율에만 맡겨져 투명하지 않으며, 이 자율성을 무기로 학교가 기성회비를 실질적인 등록금 인상의 도구로 삼는다는 주장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가장 결정적으로 국·공립대는 기성회비를 징수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기성회비 납부에 대한 어떠한 법령도 마련 돼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공립대는 대학 내규인 기성회 규약을 근거로만 학생들에게 기성회 비를 징수해왔다는 것이다.

 

  기성회비 폐지되자 운영 어려워진 국·공립대, 등록예치금으로 이름만 바꿔 징수

  계속된 학생들의 승소로 기성회비를 폐지할 수밖에 없었던 국·공립대는 국회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입법을 요구했다. 그러나 2015학년도 등록금 징수 기간에도 기성회비를 대체하는 입법이 늦어지자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는 등록금고지서에 기성회비를 대신해 ‘등록예치금’을 고지하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등록예치금 또한 기성회비와 같이 징수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에 한국교원대학교 학생 73명은 등록 예치금에 대한 반환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소송을 대행한 한국교원대 총학생회는 소장에서 “한국교원대가 수업료 면제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수업료의 성격을 띠고 있는 등록예치금 징수는 부당하며, 등록예치금 징수는 법률과 학칙에 근거가 없고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이 통과되더 라도 통과 이전에 징수된 등록예치금에 대해 소급적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원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단순히 등록예치금을 돌려받기 위한 것보다는 기성회비 반환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또 다시 등록예치금이라는 부당이익을 취득한 학교에 대한 항의의 취지다.”라며 “학교와 이를 책임져야 할 국가는 이런 식의 ‘눈가리고 아웅’식 해결보다는 운영비용에 대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 다.”고 말했다.

 

  국회의 해결책은 꼼수개정?!

  지난 16일(월), 국회는 기성회비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제정안)’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을 명확히 규정하고 국립대의 회계 및 재정 운영 체제를 정비해 자율성과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제정안의 실제 내용을 잘 따져보면, 이러한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제정안 제1장 제4조에 따르면 ‘국가는 국립대학의 교육 및 연구의 질 향상과 노후시설 및 실험·실습 기자재 교체 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 국가는 각 국립대학에 지원하는 지원금의 총액을 매년 확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 ‘노력하여야 한다.’ 등의 용어를 사용해 정부의 재정 지원 여부에 대해 추상적으로만 명시하고 있으며 정말 필요한 국·공립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강제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또 제정안 부칙 제2조(수업료등에 관한 특례) 에서는 “2015년 1월 및 2월에 수입되는 2015학년 도 수업료 등은 2015학년도 대학회계의 세입으로 한다.”라고 명시해 징수된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줬다. 이는 불법을 합법으로 정당화 해주는 소급 입법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국·공립대 학생들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국·공립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이 같은 국회의 개정에 국·공립대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교육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2일(월)에 제정안을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교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기성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제정안에 되려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포함시킨다는 조항이 있다.”며 “이는 기성회비 반환을 명령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행태다.”라고 말했다. 부산대학교 역시 지 난 16일(월)에 제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대 황석제(기계·10) 총학생회장은 “제정안은 대학의 기성회비 징수를 합법화하며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법안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제정안과 같은 꼼수 개정을 하기보다 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 방안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황 총학 생회장은 제정안에 따른 재정위원회 운영에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도 했다. “제정안 제8조 제3항에는 재정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교원과 직원 및 재학생을 각각 2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현재 학내의 예산을 심의하는 재정위원회에 학생위원이 단 2명뿐이다. 공정한 심의를 위해선 학생위원들의 의견을 대신하는 위원의 수를 늘려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

  이렇게 기성회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성회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기성회비와 관련한 법원 판결 취지를 가장 잘 살리는 방법은 수십 년 동안 학생과 학부모가 부당하게 부담해왔던 기성회비를 정부가 국고로 충당하는 것이다.”며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등록금에 의존해 국립대학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고 밝히며 국·공립대학에 대 한 정부의 지원이 우선돼야 함을 밝혔다. 제정안에 따라 기성회비가 수업료로 통합된 것에 대해서는 “등록금 총액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 면서, 단계적으로 정부 부담을 늘려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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