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수(九州) 지방의 관문 후쿠오카(福岡)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이타현(大分縣) 방향으로 2시간 20분을 내려가면 유후인(由布院)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도시보다는 마을또는 고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후인의 정감(情感)을 더 잘 나타낼 것 같다. 인구는 35천 명 남짓하고 반나절이면 이 마을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높이의 빌딩이 하나도 없는 이곳이 마치 그림에서만 보아왔던일본의 중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내가 일본의 중세를 그림에서 봤다고 여기는 것이 큰 착각이자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표현처럼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뽑은 최고의 온천이 있는 마을답게 이곳에는 아기자기한 노천 온천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온천이 많은 일본이지만 유후인의 온천은 젊은이들이 힐링하러 오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을 홍보하는 일본 사람들의 정교한 마케팅 전략이 개입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로로의 배경도시인 점을 충분히 부각하고, 유후인행 버스를 탄 터미널에서 보았던 도착소요시간이 몇 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지켜진 주도면밀함을 고려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오이타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소자키신(磯崎新)이 설계해서 더 유명해진 JR 유후인역 앞에서 다양한 온천시설을 갖춘 료칸으로 손님을 실어나으려는 인력거꾼이 호객(呼客)하는 소리가 이채롭게 들린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정갈한 길거리 음식과 기념품 가게를 섭렵하며 역 앞에 펼쳐진 길을 계속 올라가다 관광객으로 덜 붐빌 것 같은 작은 온천의 입장권을 끊었다. 어색함을 넘어 신기했던 점은 남탕과 여탕의 경계는 2미터 정도 높이의 대나무 벽이 고작이고, 바닥 쪽은 트여있어 온천수는 같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대나무 벽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여성들의 흥겨워하는 소리는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유교적 가르침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일본에 가면 일본의 법을 따르는 것이 순리겠지만,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다른 일본의 문화를 다시 한 번 인식한다.

료칸과 료칸 사이로 난 수많은 산책길, 수공예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공방(工房), 금빛과 물안개의 미학 긴린코(金鱗湖), 긴 세월을 식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 그리고 이 것을 즐기러 온 연간 4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 특별한 봄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과 이국적인 노천 온천에서 피곤함을 날려버리고 싶은 사람에게 유후인 여행을 권한다. 좁은 길 사이에서 어렵사리 피어나온 야생화조차 향긋한 냄새를 퍼트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소박함은 작은 것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것이 발하는 소박함은 큰 것의 그것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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