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축구대표팀을 가리켜 전차군단이라 부른다. 이 별칭에서 풍기는 강한 이미지는 이미 게르만족에 대한 로마인의 시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대개 지금 프랑스 지역) 원정 때 라인강을 건너 침범하는 게르만족과 접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기골이 장대하고 힘센 그들의 모습은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게르마니아를 저술한 타키투스는 카이사르처럼 생각하는 한편, 도덕적으로 타락한 로마에 비해 건전한 게르만족의 생활상을 높이 평가했다.

신성로마제국(962-1806, 1제국) 시절 독일은 정치·경제적으로 분열되었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의 문물을 모방하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사정은 18세기 말엽을 거치며 일변한다. 문학에서는 괴테와 쉴러, 철학에서는 칸트와 헤겔 등이 활동하면서 독일은 자국의 문화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로써 독일은 비천한 문화수입국에서 시인과 사상가의나라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독일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불행하게도 독일제국(2제국)과 나치의 제3제국을 거치면서 퇴색한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에서6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국가로 전락한다.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는 독일의 양면성(정신성과 야만성)을 상징한다. 이 소도시는 괴테와 쉴러, 빌란트와 헤르더가함께 활동했던 곳이자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산실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근교에는 나치의 학살이 자행되었던 부헨발트(Buchenwald)라는 강제수용소가 있다.

패전 후 독일은 나치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빌리 브란트 연방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동서독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는 가운데 1990년에 극적으로 통일을 이루게 된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독일의 분단극복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현재 독일은 유럽연합(EU)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사회복지, 환경문제, 연합정치 등에서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앞으로 독일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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