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은 지난해 한 광고 회사에서 석 달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광고 기획자가 꿈인 그녀는 인턴을 하며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업무를 배울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직원들은 업무에 대해 잘 알려주지 않았고, A양이 용기내어 직접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시큰둥했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라는 말에 “내가 하는게 더 낫다.”라는 직원들의 대답…. A양은 “인턴은 계약직이나 정규직 대신 쓰는 값싼 노동력일 뿐.”이라며 “인턴을 하려는 취업준비생들은기대를 많이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의 월급은 한 달에 40만 원이었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대학생들의 인턴과정은 취업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됐다. 그런데 이 인턴제도를 악용하는 기업이 늘며 이른바 ‘열정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열정페이란 무급 및 저임금으로 청년들의 노력을 착취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하는 젊은 구직자들에게 급여를 적게 주고 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이는 무보수로 일을 배워야 하는 패션 및 방송 관련 업계에서 성행하던 고용방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일반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도 지난해까지 모든 인턴을 무보수로 채용해 논란이 일었다. 청년들은 다른 곳도 아닌 인권위에서조차 인턴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냐며 인권위에 인턴 근로조건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인권위는 “인턴제도는 근로가 아닌 경력개발을 목적으로 하므로 급여를 책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열정페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비판이 이어지자, 인권위는 올해부터 인턴에게도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전했다.
 
 
  청년들, 열정페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지난 2월, 통계청은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이 11.1%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1.5%) 이후 최고치이다. 이렇게 극심한 취업난에 청년들은 열정페이라도 상관없으니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에서 20·30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인턴들의 열정페이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65.2%의 구직자들이 ‘인턴 근무 시 보수가 적고 일이 힘들어도 기꺼이 참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구직자들이 열정페이를 감수하겠다는 이유는 △힘든 일도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55.6% △취업난 시대에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함: 22.5% △경쟁사회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17.4%로 나타났다. 저임금 인턴 경력이 있는 B군은 “극심한 취업난에 경력을 쌓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마저도 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급여가 적은 것뿐만 아니라, 단순근로 강요 및 채용공고와 다른 활동 등의 사례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조사한 ‘대학생 대외활동 실태’에 따르면 인턴 피해 경험은 △단순근로: 36.8% △근로대가 미지급: 22.7% △불명확한 공고: 22.7% △공고와 다른 활동 내용: 20.1%로 집계됐다. ‘근로대가 미지급’이라고 답한 C군은 “공익 캠페인 포스터를 소매점에 배포하는 일을 했었는데, 포스터를 가장 많이 배포한 3명의 학생에게만 보수를 줬었다.”라고 말했다. ‘공고와 다른 활동내용’이라고 답한 D군은
“패션 관련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해서 패션회사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한 일은 쇼핑몰에 있는 상품을 회사 블로그에 똑같이 복사하고 붙여넣기를 하는 일이었다.”라고 전했다.
 
 
  문제 해결 위해 나선 고용노동부, 보여주기식정책에 그친다는 비판 제기돼…
 
  지난해 10월, 서울패션위크가 열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청년들이 ‘하루 14시간 근무, 월급은 쥐꼬리, 이게 사람 사는 겁니까?’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이들은 “패션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청년들을 무급인턴으로 고용하고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줬다.”고 외쳤다. 이후에도 이들은 지속해서 패션계의 △최저임금 미준수 △법정수당 미지급 △노동법 위반 등 잘못된 관행을 고발했으며, ‘추적 60분’에서도 이에 대해 방송을 하며 논란이 커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지급 및 서면 근로계약 등 청년노동자들의 권리 확립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11일(일) ‘광역근로감독과’를 신설해 △패션 △제빵 △호텔 및 콘도 업체를 대상으로 한 인턴들의 비정상적인 근로조건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정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고용노동부에서 감독하겠다는 사업장은 △패션 △제빵 △호텔 및 콘도 업체에 국한돼 있는데, 열정페이로 지적된 문제는 현재 일반 기업에서도 흔히 행해지고 있는 관행이라는 것이다. 더해 고용노동부가 감독하겠다는 사업장 수도 적고, 감독 인원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고용부가 감독하겠다는 150개의 사업장은 총 사업장 수의 약 0.9%에 불과하다.”며 “45명 남짓한 인원으로 모든 사업체를 감독하겠다는 ‘정책 쇼’를 하기 전에 근로감독관의 인력 충원 및 임금체납 등에 얽매인 처우개선을 먼저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광역근로감독과가 개설된 것은 패션업계의 불합리한 열정페이가 고발됐기 때문이다. 예산 및 인원이 부족해 우선 고발된 사업체들부터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업체들은 앞으로 감독해나갈 방침이다.”라고 전했다.
 
 
  청년들의 반격, 블랙기업 퇴출운동
 
  지난해 11월,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든 청년유니온 소속 청년들이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기업들을 비판했다. 청년유니온은 2010년 3월에 창립된 노동조합으로, 청년들이 겪고 있는 노동·일자리 문제를 당사자인 청년들이 직접 해결해 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들은 △전국 편의점 시급조사 △30분 배달
제 폐지 운동 △블랙기업 운동 등 아르바이트 및 인턴을 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권리증진을 위한활동을 해오고 있다.
 
  블랙기업이란 일본의 청년단체 ‘포세’가 처음 만든 개념으로 청년들의 불안정한 지위와처지를악용해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청년유니온은 블랙기업의 원인으로 △노동시장 규제 완화 △노사관계 작동 장애 △조직 내 자정능력 상실 △근로감독 노동행정 기능 장애 등을 제시했다.
 
  지난달 25일(수) 이들은 블랙기업 제보 사이트를 개설하고 제보된 피해사례를 분석한 뒤, 블랙기업 지표개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밝힌 블랙기업 지표는 △고용 불안정 △장기 노동 △직장 내 괴롭힘 △폐쇄적 소통구조 등 총 4개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표참고).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기업들이 청년노동자들을 일회용품 쓰듯 쓰다버리는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나
라 경제의 미래는 없다.”며 “우리가 제시한 블랙기업 지표는 현재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인지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할 기업들을 평가할 수 있는 실천적 도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청년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열정페이의 당사자들인 청년들이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박계배 대표는 청년들에게 “스스로 제 노동력 값을 알아야 한다.”며 “기업들과 정정당당하게 근로계약서를 쓰고, 더는 열정만 내세우지 마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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